지난 2007년 집에서 닌텐도 게임 '위'로 운동을 하던 한 한국계 미국인 2세는 창업 아이디어가 뇌리를 번뜩 스쳐갔다. 동작감지 센서와 소프트웨어(SW)를 결합해 몸에 착용할 수 있는 건강관리 기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가 만든 제품은 8년 만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애용하는 '빅 히트' 작품이 됐다. 이 한국계 2세도 창업 초기에 죽을 뻔한 고생을 거쳐 뉴욕 증시 상장에 성공하면서 주식가치만 6억달러에 이르는 '잭팟'을 터뜨렸다. 바로 건강관리를 위한 웨어러블 전문업체 피트비트(Fitbit)의 공동 창업자인 제임스 박(38ㆍ사진) 최고경영자(CEO)의 얘기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피트비트 주가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첫날 공모가인 20달러보다 48.4%나 폭등한 주당 29.68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와 올해 상장된 기업의 주가가 첫날 평균 각각 13%, 14% 오른 것에 비해 3배가 넘는 상승률이다. 초과배정 옵션을 제외한 피트비트의 시가총액은 41억달러로 증가하면서 올 들어 기업공개(IPO) 기업 가운데 3위를 기록했다. 공동 창업자인 박 CEO와 에릭 프리드먼 최고기술책임자(CTO)도 돈방석에 앉았다. 이들의 보유 주식은 각각 1,900만여주(지분율 11.2%)로 시장가치로 6억달러에 육박한다.
하지만 박 CEO가 성공 스토리를 쓰기까지 과정은 숱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를 중퇴한 그는 1999년 모건스탠리에 입사해 증권거래 SW 개발자로 일했다. 이듬해 에페시테크놀로지라는 전자상거래 회사를 만들었고 2002년에는 와인드업랩스를 창업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는 와인드업랩스를 인수한 시넷네트웍스에서 2년간 상품개발 담당자로 일했다.
그가 세 번째 창업기업인 피트비트를 설립한 것은 2007년. 프리드먼 CTO와 함께 사비를 털어 마련한 40만달러는 1년 만에 바닥이 났다. 당시 프리드먼 CTO가 "신용카드를 빌려줄 5명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낙담하자 박 CEO가 "너무 비관적이다. 50명은 될 것"이라고 위로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2008년 9월 스타트업 컨퍼런스인 '테크크런치'에서 시제품을 소개해 2,000개의 선주문을 받는 데 성공했다. 납품시한은 크리스마스까지였다. 하지만 제조업에는 문외한이다 보니 대량생산은 쉽지 않았고 두 사람은 생산라인을 구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을 3개월간이나 돌아다녔다. 호텔 방에서 "죽을 것 같다"며 일곱 차례나 서로 토로할 정도로 힘든 순간이었다.
결국 1년 뒤 크리스마스 때야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납품기한이 지연되는데도 주문량이 2만5,000개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박 CEO는 "올바른 시기에, 올바른 제품을, 올바른 가격에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트비트 제품은 걸음 수와 이동거리, 칼로리 소비량, 심장박동 수, 수면 패턴 등을 측정해준다.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현재 디지털 웨어러블 기기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오바마 대통령이 대학 농구경기, 아일랜드 총리와의 백악관 회동, 언론 인터뷰 등에서 걸핏하면 피트비트 제품을 손목에 끼고 나타나 최고의 홍보맨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2년 7,600만달러던 매출도 지난해 7억4,500만달러로 10배로 늘었다. 시장조사 업체인 IDC에 따르면 2019년에는 1억2,600만개의 제품을 판매해 280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위협요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민·조본·미스피트 등 기존 경쟁자는 물론 삼성·애플 등 정보기술(IT) 공룡들도 건강 웨어러블 시장 공략에 가속을 붙이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