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잊힐 권리


지난 13일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스페인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하 곤살레스가 구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곤살레스가 1998년 자신의 사회보장 대출금 회수를 위해 진행된 부동산 경매공고가 사생활을 침해한다며 내용을 삭제하거나 검색되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한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당시 기사를 실었던 '라반구아르디아'과 구글에 삭제를 요구했었다.

사생활 보호·알 권리 세계 곳곳서 대립


그러나 구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결국 유럽연합(EU) 최고재판소인 ECJ로 넘어가 이른바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ECJ는 "검색 결과 삭제는 정보의 성격, 정보주체의 사생활에 대한 영향, 해당 정보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정보주체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른바 '잊힐 권리'의 판단기준까지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이 개인정보 보호와 인터넷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우선 인터넷 검색기업들의 비용부담 증가가 예상된다. 구글은 주당 약 530만건, 우리나라의 한 대형 검색 포털도 매달 9,000건 정도의 정보삭제 요청을 받는다고 한다. 관련기업들은 개인정보 검색 차단과 삭제 요청을 수행하기 위한 비용부담 증가가 불가피하다. 이 비용은 결국 인터넷 이용자인 국민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또 검색된 정보의 가치하락이다. 잊힐 권리의 인정으로 검색에서 제외되고 차단된 정보가 증가한 상태에서 추출된 검색 결과는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내용이 적고 가치가 내려갈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비즈니스 칼럼니스트인 존 개퍼가 지적한 것처럼 활용하려는 정보가 궁극적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지지 않는다면 인터넷의 효용성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관련기사



반면 잊힐 권리가 산업위축 효과만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새로운 산업이 틈새시장으로 뜰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스냅챗이나 프랭클리챗 등 전달된 메시지를 완전하게 삭제하는 기능과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을 함께 갖춘 애플리케이션의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이른바 '디지털세탁업'인 정보삭제 서비스가 각광을 받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어떤 방향이든 ECJ의 이번 판결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작지 않다. 우리나라도 학계와 산업계가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정보주체와 검색엔진사업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시급한 시점이다. 가령 잊힐 권리 보장을 위한 개인정보 검색 차단과 삭제에 대한 가이드라인 등이 요구된다. 범죄기록 또는 유명인·정치인 등과 같은 공인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로 보호할 것인지, 콘텐츠 생산자의 기록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른 권리는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명확한 인터넷 삭제 기준 만들어야

또 정보주체와 정보생산자 간 분쟁을 신속하고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한 개인정보 분쟁 조정이나 단체소송을 확산, 정착시킬 수 있는 민관의 협력 또한 중요하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개인의 사생활은 시대의 변화와 정보기술(IT) 발전에 따라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 이번 판결 또한 개인정보 보호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가 점점 더 높아질 것임을 예고한다.

최근 발생했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의 불명예를 극복하고 정보화 선도국가로서의 지위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남들보다 앞서는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장광수 한국정보화진흥원장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