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그후 10년]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돌아보니 "미리 조치 했어야" 회한에 '옥중 인터뷰' 큰 반향도 이학인 기자 leejk@sed.co.kr 관련기사 외채, 최근 급증하는데… 경제지표를 통해 살펴본 변화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돌아보니 전문가들이 내다본 한국경제좌표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산에 갈 때도 (그때) 어떻게 했으면 좀더 잘했을지 생각한다. ‘먼데이 모닝 쿼터백(주말에 벌어진 미식축구 경기 결과를 놓고 월요일 오전에 사람들이 모여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란 말이 있지 않나. 조금 더 멀리 던질 걸, 미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여러모로 후회가 된다.” ‘환란위기의 주범’이라는 멍에를 뒤집어 쓴 채 10년을 칩거했던 이경식 전 한국은행 총재의 회한에 찬 말이다. 본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에 걸쳐 해방 이후 최대의 국가 위기이자, 이후 우리의 경제ㆍ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97년 외환위기’에 대한 심층적인 성격규명과 이를 통해 한국 경제의 앞날을 진단하기 위해 ‘외환위기 그 후 10년 한국경제의 좌표는’ ‘선진국의 길 GQ에 있다’는 주제로 대하 시리즈를 연재했다. 특히 이 시리즈에는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이란 타이틀로 이 전 총재를 비롯, 임창열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강봉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유종근 전 김대중 대통령 경제고문, 이용득 당시 금융산업 노조위원장 등 위기의 순간과 극복과정에서 우리경제의 중심에 있던 30여명의 생생한 증언이 수록됐다. 환란위기의 또 다른 주범으로 몰려 재판정에 섰던 강경식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97년 초 한보 부도가 났을 때 이미 경제가 파산됐다고 생각했다. 파산상태가 아니었다면 부총리직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이미 망했는데 뭐 하러 들어가냐’며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로지 신현확 전 총리만이 그 자리를 맡으라고 했다”며 위기책임론에서 한발 비껴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강 전 부총리의 뒤를 이어 구원투수로 투입됐던 임 전 부총리는 “잘했으면 외환위기는 막을 수 있었다. 당시 환율을 시장 자율에 맡기고 외채 관리 및 감독 시스템만 잘 갖췄어도 외환위기는 예방할 수 있었다. 분명히 법적 책임은 없어도 정책 실패의 책임까지 모면할 수 없다”는 말로 전임자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재계ㆍ노동계의 생생한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98년 1월 전경련 회장단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만났을 때 최종현 당시 전경련회장이 ‘기업인이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고 말했다. 겸양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외환위기의 모든 책임을 재벌구조로 돌렸다”. (손병두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변화를 거부한 은행 모두에 의해 금융산업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했다. 관치금융의 폐해가 결국 환란을 자초한 결정적 내부 요인이었다.”(이용득 당시 금융산업노련 위원장) 위기 극복과정에서 기업구조조정 등과 관련된 숨겨진 일화도 속속 공개됐다. 강 의원(당시 청와대경제수석)은 대우그룹 문제와 관련, “김우중 회장을 만나기 위해 힐튼호텔을 찾아간 것만 20번이 넘는다. 대우를 살리기 위해 힐튼호텔이든, 교보생명 주식이든 팔라고 호소했지만 그는 모든 걸 외면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 그리고 김 회장의 3자 회동 때도 그랬다”고 증언했다. 현재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유종근 DJ경제고문과의 옥중 인터뷰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유 전 고문은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으로 꼽히며 전북지사로, 그리고 잠재적인 대권주자로까지 떠올랐다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는 “DJ가 조지 소로스와의 화상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차에 타라고 했다. 그는 선거공약을 보여줬다. 시장원칙과 어긋나는 게 너무 많았다. DJ에게 ‘방금 IMF프로그램을 지지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따져 물었다”며 DJ와의 갈등의 소개했다. 인터뷰에 응했던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경험과 증언이 한국경제의 미래를 밝히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한결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규성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금융산업 재편과 관련,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규제를 풀자는 안에 대해 정치권ㆍ시민단체ㆍ언론 등이 엄청난 반대를 했다. 만약 정부안대로 됐다면 제대로 된 토종은행 한두개쯤은 있게 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임 부총리 체제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던 최광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은 “세출 규모가 커지고 국가부채가 증가한다는 것은 큰 정부를 지향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큰 정부, 작은 시장’이 국민을 잘 살게 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이라도 세출을 동결하거나 줄이는 것만이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고 지적했다. 입력시간 : 2007/11/20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