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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자들이 새로운 시장을 지배한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실증 결과 선발자의 64%가 시장진출에 실패했고, 이들의 시장 점유율도 고작 6%에 불과했습니다. 급진적 혁신활동의 결과로 혁신적인 성공이 나온다는 말도 사실과 다릅니다. 혁신 기술로 시장에 진출했다는 상품을 보면 62%의 핵심기술이 이미 기존에 존재하는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대부분의 기술경영분야 전공자들이 고민 없이 받아들였던, 전형적인 성공적 혁신활동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일깨우는 피터 골더(Peter Golder) 다트머스 대학 교수의 발언에 청중 모두가 집중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이노베이션 분야 세계적 석학인 그의 입에 주목했고, 꼼꼼히 메모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골더 교수의 강연 주제는 '기업관점에서 혁신을 통한 새로운 산업창출의 중요성'과 '국내 기업의 글로벌 도약을 위한 기술과 경영의 효과적 결합의 중요성'이다. 혁신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를 하나하나 지적하자 참석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당대 시장 리더기업은 새롭게 진입하는 혁신 기업들에 의해 예외 없이 추월당했다"며 "시장 리더들이 영속적인 리더의 지위를 갖는다는 말은 오해"라고 강조했다. 혁신을 통해 시장지배자가 되면 선발자의 프리미엄을 활용해 그 지위를 영원히 유지한다는 일반적 관념을 깬 것.
이와 함께 골더 교수는 "새로운 상품개발이 소비자들의 구전(Word of Mouth)에 영향을 받는다고 인식되지만 급격한 판매가 이뤄지는 데에는 평균 12년의 시간이 소요됐다"면서 "어떤 지점에 도달했을 때 급격한 확산인 도약(takeoff) 이 발생하므로 제품시장수요 확대는 구전적인 요인보다는 혁신활동의 누적성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자가 제품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품 초기 개발에는 기술자의 기여가 크지만 소비자의 지식, 감정 등 제품 수용성을 좌우하는 영역에서는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피력했다.
강연을 듣고 난 한 참석자는 "피터 골더 교수의 혁신에 대한 강의는 기술경영을 연구하는 연구자들뿐 아니라 현장 전문가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줬다"고 말했다.
8월 22일과 23일 이틀간 인천송도 한국뉴욕주립대에서 열린 '2014 기술경영 썸머스쿨'은 '혁신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한국의 기술경영(K-MOT)' 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국내외 석학과 산업계 인사가 한자리에 모여 기술경영의 최신 트렌드와 기술경영 우수기업의 성공사례를 공유했다. 기술경영 석·박사 대학원생과 산학연 MOT 관계자 200여명도 참석했다. 빅데이터, 3D프린팅, 사물인터넷(IOT) 등 최근 이슈화 되는 기술에서부터 기업가 정신, 오픈이노베이션, 기술추격, 기술혁신 등 융합을 통한 새 패러다임과 기술경영 발전방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기업가 정신 교육의 대가 왕포캄(Poh Kam Wong)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탈추격과 추격에 대한 혁신전략 사례'를 발표하고 우리 정부와 국내 기업이 취해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했다. 왕포캄 교수는 "일반적인 사업 경로를 탈출하는, 경로 창조형(Path-Breaking) 추격활동이 혁신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후발주자들이 모방을 통해 창조성을 갖게 하는 창조적 모방이 필요하며, 후발기업이 선발기업을 추격하는데 있어서 기업가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실제 산업현장의 기술경영, 기술 창업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현장에서 뛰고 있는 전문가의 생생한 강연도 이어졌다. 김의석 한국조폐공사 수석연구원은 3D프린팅 기술을 융합의 관점에서 발전시킨 것에 대해 설명했다. 국가별 3D프린팅 발전 전략을 탐색하고 융합 후 사용자 혁신 파급효과 등을 파악하며, 가치 사슬 상에서의 3D프린팅 기술의 특성과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해 조사해 기술경영에 나섰다. 이성만 LG화학 수석부장은 LG화학의 기술혁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부장은 전략의 공유가 있어야 성공적인 기술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내부에 다양한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과감한 도전, 협업, 연구자들의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집단 지성의 활용, 혁신적 기술을 장려하고 전방 산업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기술경영 추진의 키워드라고 자신했다.
이민화 KAIST 교수도 '창조경제와 기술사업화' 강연에서 "단위 과제의 성공 확률을 높이고자 했던 기존의 정책에서 성공확률은 낮더라도 블록버스터급 성공과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조형 연구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산업계 전문가 4명이 참여해 '산업현장에서 바라본 기술경영 발전방향'이라는 주제의 패널토론도 실시됐다. 김철준 한독 대표, 이석 KIST 연구센터장을 비롯해 산학연, 중소기업, 대기업이 함께 다양한 관점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구성된 패널들은 기술경영대학의 역할과 산업체와의 거버넌스 방안, 산업계에서 필요한 기술경영 연구 주제 등에 관해 폭넓은 논의를 진행했다.
이 센터장은 사업화 연계 R&D프로젝트를 기술경영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기술경영은 아이디어와 사업화 단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써 사업화를 위해 기술경영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를 특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대학 내에 비즈니스 개발 부서를 설립해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응용연구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외에도 기업체 수요를 반영한 대학의 기술경영 커리큘럼 개선과 특정분야 MOT 교육보다는 다양한 시각을 학습할 수 있는 커리큘럼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 다른 참석자는 "기술경영 교육과 산업계와의 공동 발전방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고 평가하면서 "향후 패널과 참석자간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높이기 위해 미리 토의 주제 설문을 받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더욱 알찬 토론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하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과 기술경영경제학회가 공동 주관한 이번 썸머스쿨은 학계와 산업계 중심의 균형 잡힌, 풍부하고 경험 있는 강사진과 커리큘럼으로 구성됐고 최근 이슈 등 교육 수요를 반영한 산업계 중심의 참여형 교육으로 진행됐다. KIAT 관계자는 "기술경영인이 하나 되는 정보 공유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라고 말했다.
더불어 국내외 각 MOT 분야별 전문가 토론을 통해 한국의 기술경영 발전 신규 어젠다를 발굴하는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MOT 교육방향이 수요자인 산업계 관점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도 큰 수확 가운데 하나다.
차동형 산업부 산업기술정책국장은 "이번 썸머스쿨을 통해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에 부응한 기술경영 발전방안이 적극 논의됐다"면서 "국내 기업의 기술경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과 이노베이션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치 창출을 도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이러한 흐름에 맞는 MOT 인재 양성을 위해 산업현장 친화형 기술경영 교육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정부는 기술경영 대학원을 통해 MOT 전문 인력 양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올해는 기술사업화 아카데미의 하나로 기술경영 8개 대학원의 공동 후원을 받아 썸머스쿨 사업을 추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