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정부의 통계 왜곡 의혹을 이유로 아르헨티나에 창설 이래 최초의 '불신임' 조치를 내렸다.
IMF의 불신임 조치는 즉각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않지만 해당국이 향후 IMF에서 돈을 빌릴 수 없게 되는 등 추가 제재로 이어질 수 있고 나아가 영구 퇴출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가뜩이나 국제사회에서 신임을 잃고 있는 아르헨티나 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IMF 이사회는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본부에서 24명의 이사회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르헨티나의 (국제사회에 통계 왜곡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가 불충분했다"며 아르헨티나에 대한 불신임 결정을 발표했다. 이는 IMF가 1945년 창설된 이래 회원국에 대해 최초로 내린 조치다.
이사회는 이어 아르헨티나 정부에 오는 9월29일까지 통계 오류를 바로잡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11월13일까지 아르헨티나의 개선 상황을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IMF가 아르헨티나에 대해 이처럼 강력한 경고를 내린 것은 아르헨티나가 오래 전부터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 등 경제 통계를 왜곡시켜 부당이득을 취하고 국제금융의 흐름을 교란시켜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례로 민간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의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25.6%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정부 산하 통계기관인 국립통계센서스연구소(Indec)가 발표한 수치는 10.8%에 그쳤다. 또 민간에서는 지난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4%로 제시했지만 Indec는 5%로 두 배가량 높게 잡았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기반을 둔 리서치 회사 ACM은 "물가상승률 조작으로 아르헨티나가 얻는 수익이 2007년부터 현재까지 68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 같은 통계 왜곡 의혹에 대해 IMF가 이미 아르헨티나에 수차례 시정을 요구했음에도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2010년 새로운 물가상승률 통계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이래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으며 자국 정부가 추정하는 통계가 정확하다는 발언만 반복하고 있다. IMF가 경제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요청한 여러 자료 역시 묵살됐다. 이에 따라 현재 IMF는 주요20개국(G20) 가운데 유일하게 아르헨티나 연례 보고서를 내지 않고 있다.
이번 IMF의 강경 조치로 아르헨티나는 당장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시장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국채 투자자들의 탈출이 이어지는 가운데 파장 증폭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이미 지난해 아르헨티나 정부 부채의 21%(376억달러 규모)를 차지하는 물가연동 국채가 21%의 손실을 기록하면서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를 회피하는 상황에서 이번 악재가 자금사정을 한층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스페인 에너지기업 렙솔로부터 국유화한 YPF의 원유 생산을 늘리려면 자금조달이 시급하지만 이 또한 불투명해졌다.
IMF가 사실상 최후통첩 시한으로 제시한 9월까지 아르헨티나가 통계 왜곡을 바로잡지 못할 경우 후폭풍은 훨씬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IMF로부터 추가 대출 금지는 물론 표결권 정지, 강제 탈퇴 등의 조치가 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이번 조치에 대해 IMF 긴급 이사회 소집을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경제부는 "IMF가 새로운 실수를 저질렀다"면서 "아르헨티나와 관련된 IMF의 정책과 세계 경제 및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