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일찍 (채권단의) 도움이 있었더라면.."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한국 D램 업체를 제소하기 며칠 전. 저녁 자리에 두시간 넘게 마주앉은 하이닉스반도체 고위관계자의 얼굴에는 미소와 아쉬움이 연신 교차했다. 수직상승 중인 D램값에는 기쁨을 내비치면서도 구조조정안이 두달 이상 늦어지면서 파생된 회사의 물질적ㆍ정신적인 '피로함'에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화 막바지. 그는 "마이크론만 아니었다면."이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올초 장기간 매각협상만 아니었어도 정상화 속도가 빨라졌을지 모른다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이런 회한 섞인 발언을 비웃기나 하듯 마이크론은 끝내 하이닉스를 겨냥해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했다. 대의명분은 한국업체들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하라는 것이었지만 그들의 제소장에서는 "하이닉스를 퇴출시켜야 우리가 산다"는 생존게임의 메시지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7분기 연속 적자라는 총체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속죄양이 필요하다는 의중을 제소라는 간단명료한 방법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를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켕길 만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종 의사결정이야 채권단 합일로 이뤄졌다지만 하이닉스의 생존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마이크론이 한국 반도체업체의 불공정행위를 제소했으나 정작 그들도 반도체 판매 과정의 불공정행위로 미국법원에 피소된 상태다. 마이크론에 앞서 한국업체를 제소한 인피니온이 독일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받았던 점을 생각하면 웃음마저 나온다. 불행히도 그들의 제소를 마주한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제소를 접하고도 하이닉스의 생존을 비웃는, 심지어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내부의 적은 없는가. 정부와 채권단은 구조조정안 확정에 다시 한번 몸을 사리고 있지는 않은가. DDR D램 생산공정을 갖추고 모처럼 생존의 기틀을 다져가는 하이닉스에 원군은 없는가.
기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