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대기업 비밀주의 유감

최근 코스닥 A사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회사의 실적이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주 거래처 측에서 대외 홍보를 자제하라는 '부탁'이 있어서 힘들 것 같다"며 사양했다. A사는 국내 대기업의 정보기술(IT)계열사에 부품을 주로 공급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비밀주의에 증권가가 속을 태우고 있다. A사처럼 국내 대기업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IT장비업체에 최근 '입 단속령(令)'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IT 기업인 이 대기업은 액정표시장치(LCD)와 반도체 등의 생산라인에 대한 정보나 투자스케줄이 하청 업체들의 기업설명회 과정에서 자칫 외부로 새어 나갈 것을 우려해 '주의'를 시키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반적으로 IT부품회사들은 국내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할 뿐만 아니라 일부 회사는 지분투자까지 받고 있다. 그들에 대기업은 고객을 넘어 '상전'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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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대기업 측에서는 '부탁'이나 '자제'를 요청하더라도 해당 업체는 이를 사실상 '지시'나 '금지'로 받아 들이는 게 현실이다. 또 다른 코스닥기업 사장은 "대기업들이 헛기침만 하더라도 눈치껏 알아서 모셔야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대기업과 거래하는 IT부품회사들이 기업설명(IR)에 소극적이다 보니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애를 먹고 있다. 투자자들을 위해 자사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증권가에 알려야 할 상장사들이 애널리스트의 탐방마저도 마뜩잖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의 IT담당 애널리스트는 "IT대기업과 주로 거래하는 IT장비업체들은 요즘 증권사의 탐방을 아예 받지 않거나 거부하고 있어 애를 먹고 있다"며 "설령 회사를 방문하더라도 IR 담당자들이 중요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형식적인 대화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이는 특히 요즘 분기 말을 맞아 대기업 측에서 IT인프라 투자를 늘리면서 부품공급 효과가 IT장비업체들까지 확산되면서 이들 기업의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IT장비업체들이 이를 놓고 IR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의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사업과 관련한 정보가 새 나갈 것을 짐짓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놓고 증권가에서는 "국내 대기업의 비밀주의가 너무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기업들이 실적 전망마저도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을 꺼리는 현상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영업비밀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기업과 주주가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시장에 전달해야 한다는 주식시장의 기본 원칙마저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대기업과 협력사의 동반성장이 비단 기술이나 영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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