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러지고 집이 망해 땔감마저 떨어졌다. 철부지 아이들도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추위와 배고픔을 내색하지 않고 참았다.엄마와 아이들은 지난 1년동안 열심히 일해 마침내 장작과 쌀을 구할 수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 아랫목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으면 방 안에 온기가 돌고 밥도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엄마는 고된 줄도 몰랐다.
김대중 대통령은 21일 국민과의 TV대화에서 이같은 엄마의 심정으로 우리 경제를 비유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아이들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큰 애들은 서로 아랫목을 차지하려고 다퉜고 작은 애들은 배가 고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참아달라고 애원했던 엄마도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다. 불을 때다 말고 웃목에 이불을 깔았고 우는 애에게 젖을 물렸다. 그러는 사이 아궁이의 불씨는 다시 꺼져가고 있다.
金대통령도 아궁이(경제)에 불(개혁)을 지피다 말고 아이 달래기(지역화합)에 나섰다. 빅딜 사후정리와 지역성 인사가 대표적 예다. 삼성자동차를 인수한 대우가 적자투성이의 SM5를 계속 생산한다지만 단종이 뻔한 차를 살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정무수석과 행정자치부장관은 성격상 균형감각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자리에 대한 인선의 기준이 출신지역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2년차 징크스」란 얘기가 있다. 데뷔 첫해에 좋은 성적을 낸 선수가 2년차에는 부진하다는 것. 징크스는 선수 자신의 태만이나 지나친 의욕, 주위의 견제 등에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목표의식이 산만해지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이것은 비단 선수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사회·정치 등 어디서고 초년병들은 대부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金대통령에게도 서서히 「2년차 징크스」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金대통령은 집권 첫해 탁월한 국제감각과 경제적 식견, 불굴의 개혁의지로 사상유례없는 경제위기를 훌륭히 극복해 국내외로부터 훌륭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집권 2년차에 접어 들면서 金대통령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 같다. 목표가 분산되고 여기저기 살피는 곳이 많아졌다. 야당의 견제도 더욱 심해졌다.
지난해말 리더십 평가를 했던 한 외국언론은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에 이어 金대통령을 공동 2위로 선정했다. 데뷔 첫해에 「신인왕」이 된 金대통령이 올해 최우수선수(MVP)가 되기 위해서는 「2년차 징크스」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필요하다.
우는 아이(국민)가 불쌍하더라도 참으면서 방안에 온기가 돌때까지 계속 불(개혁)을 지펴야 한다. 섣불리 아이들을 달래고 젖주는데 시간을 빼앗기면 불씨를 다시 꺼뜨리게 된다. 金대통령은 TV대화에서 국민들에게 인내를 호소했지만 정말로 참아야 할 사람은 바로 金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