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인터뷰]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유로존 위기해결 기회 놓쳐… 스페인, EU·IMF 구제금융 불가피


은행권 자본확충 힘들어… 극단적 처방밖에 안남아
유로존 은행연합체 도입… 늦은 감 있지만 옳은 방향
금융·실물경제 효과 의문… 미국 추가양적완화 부정적
한국 경제 기초체력 튼튼… 금융시장 영향 제한적일 듯


국제금융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신현송(사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6일 "현 유럽 위기 해결에는 극단적인 처방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러면서 "스페인은 자국의 은행위기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유럽연합(EU)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다만 유로존 사태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한 뒤 "이번 위기는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위기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김석동 금융위원장)" "대공항보다 더 큰 위기"(강만수 산은금융 회장) 등의 진단보다는 그나마 밝은 톤이다.

신 교수는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재정위기의 발생 배경과 스페인 금융위기로의 전이과정, 그리고 해결책까지 국제금융의 권위자답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세계은행의 공동주최로 지난 4일부터 나흘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유럽 국가채무위기 대응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신 교수는 현 유럽 위기와 관련해 유로존 국가가 위기 해결을 위한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처음 불거진 2010년 5월만 해도 시장은 열려 있었고 유럽 은행은 충분히 증자를 통한 자본확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유로본드에 대한 이야기도 그때 나왔더라면 재정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을 줬을 텐데요. 하지만 지금은 은행의 자본확충도, 정부의 재정투입도 모두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유로존 위기는 문제 해결의 적기를 놓쳤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극단적인 처방뿐입니다."

그는 유럽 위기 해결을 위한 극단적인 처방책으로 스페인에 대한 EU와 IMF의 구제금융을 꼽았다. 신 교수는 "스페인이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위기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재정 상태가 은행업계보다 낫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이 점이 불확실하다"면서 "결국 EU 차원에서 자금을 지원 받든지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의 경우에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유로화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지 않지만 스페인은 상황이 다릅니다. 스페인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면 유로존은 붕괴의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최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유로존 은행의 부실 문제 해결을 위해 '뱅킹 유니온(Banking Union∙은행연합체)'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늦은 감이 있지만 옳은 방향"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현재의 유럽 위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본유출입 위기, 둘째는 은행 건전성 및 유동성 위기, 그리고 셋째는 부실 은행을 살리기 위한 재정 투입에서 발생한 재정위기입니다."


신 교수는 그러면서 "현재 논의되는 유로본드는 세 위기 가운데 하나 정도만 해결할 수 있다. 좀더 근본적인 대안은 자본유출입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뱅킹 유니온의 도입"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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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뱅킹유니온 도입 때까지 예금자보호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은행감독기구도 설립해야 하는 등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껏 나온 대안 가운데서는 위기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정책 해결책입니다."

신 교수는 그리스에서 촉발된 유럽 재정위기가 스페인의 금융위기로 번지고 있는 현 양상을 "그동안 뿌려졌던 과잉 유동성이 회수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페인 은행을 비롯한 유럽계 은행은 글로벌 유동성을 전파하는 가장 큰 전달자 역할을 해왔다"면서 "이들은 미국에서 달러를 조달해 미국으로 다시 들여오는 것뿐 아니라 전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 은행이 동시에 급격한 차입축소(디레버리징)에 나서면서 유럽은 물론 미국, 브라질, 심지어 중국 금융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세계경제 침체로 국내 실물경기가 침체되는 것은 우려할 일이지만 외환시장을 봤을 때 1997년 IMF 위기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견줘 한국 경제는 튼튼해졌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과잉 유동성 회수라는 큰 틀에서 보면 한국도 그 여파를 피할 수 없겠지만 위기의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국내 외환시장은 신용시장과 직결되는 성향이 높은데 아직까지 이번 위기로 신용경색이 일어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환율도 안정세를 유지하는 등 지금까지 정부가 시행해온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면서 내구성을 키운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큰 위기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이 신용경색 아니었느냐"면서 "이 기준으로 볼 때 현 유럽 위기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그때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현 금융시장을 "그동안 축적한 낙엽을 조금씩 태웠기 때문에 더 이상 태울 게 많지 않은 상황"에 비유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몹시 가물어 있던 산에 불이 붙어 급속도로 타들어 갔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는 워낙 외채가 많은데다 외채가 한번에 나가는 바람에 위기가 컸습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외채가 빠져나간 결과 이제는 변동성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는 "최근에 국내 주식시장이 50포인트 넘게 출렁거려도 환율이 3원밖에 안 올랐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최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추가 양적완화(QE3)에 대해 신 교수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어느 쪽으로 결론 날지 두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면 심리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 Q1ㆍQ2를 봐도 주식과 금융 시장이 반짝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면서 "그동안 워낙 확장한 탓에 디레버리징에 나서고 있는 은행의 총자산을 추가 양적완화로 묶어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재정 여력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점"이라며 "추경은 사태가 진전되는 것을 봐서 진행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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