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면세공화국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25.8%보다 한참 낮은 17.9% (2013년 기준) 수준이다. 소득이 그대로 노출돼 '유리지갑'으로 불리는 월급쟁이조차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다.
근로소득자들의 면세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3년 세법개정안과 올해 초 연말정산 파동에 따른 보완대책으로 면세자 비율이 48%까지 급증하면서다. 면세근로자의 비율을 줄이기 위해 최저한세 도입, 표준세액공제 축소 등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단 10만원의 소득이 있다면 의당 세금을 내는 조세원칙인 국민개세(國民皆稅)주의와 저소득층 조세부담 증가라는 딜레마 속에 논의는 겉돌고 있다. 국민개세주의는 이상적인 조세원칙임에도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저소득자에 세금을 부과해봐도 다시 재정으로 지원하고 심지어 낸 세금보다 수혜가 더 큰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매년 세법개정 때마다 가능한 많은 국민이 세금을 내도록 하되 세율은 낮게 유지하자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 화두가 되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는 근로자 면세자 비율 축소 방안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이번 논의는 연초 연말정산 파문에 따른 보완입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회가 정부에 부대 의견으로 면세자 비율 축소 방안을 제출하라는 요구에서 비롯됐다.
기획재정부가 이날 조세소위에 제출한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소득자 중 면세자 비율은 명목임금 상승 등으로 지난 2005년 이후 연간 2%씩 감소해 2013년에는 32%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014년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전년 대비 무려 14%포인트가 급등했다. 연말정산 파동으로 보완대책까지 마련되면서 면세자 비율은 추가로 2%포인트가 증가해 48%가 됐다. 이는 2005년 52.9%로 고점을 찍은 후 8년 만에 최대치다.
주로 급여 5,500만원 이하 구간에서 면세자 비율이 증가했다. 5,500만원 이하 면세 비율은 전년 대비 15.9%포인트 증가한 54.1%에 달했다. 1,500만원 이하 구간은 무려 20.5%포인트가 증가한 93.3%로 대부분이 면세자였다. 3,000만~5,500만원 구간은 16%포인트가 증가한 19.9%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3년 말 소득세법 개정으로 표준공제 등 소득공제 항목이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조세부담이 적은 1,500만원 이하 근로자들의 대부분 면세자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조세연구원은 면세자 비율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표준세액공제 축소 △특별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 △근로소득 최저한세 신설 △근로소득공제 축소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표준세액공제의 경우 2013년 세법개정안에서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될 때 면세자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항목이다.
검토 결과 현행 13만원에서 1만원을 내릴 경우 1.1%포인트, 3만원을 내릴 경우 3.9%포인트, 6만원을 내릴 경우 7.8%포인트의 면세자 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됐다. 조세연구원은 "의료비·교육비 등 공제지출이 거의 없어 표준공제 적용을 받는 1인 근로자의 세부담이 늘어날 수 있고 보완대책에서 표준 공제를 12만원에서 13만원으로 확대한 취지와 상충 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근로소득 최저한세의 경우 급여의 0.1%를 최저한 세율로 적용하면 면제자가 급여 1,500만원 이상은 16.9%포인트, 2,000만원 이상은 12%포인트, 2,500만원 이상은 8.6%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조세연구원은 비슷한 수준의 사업자와 형평성 문제, 가구 구성이나 공제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급여비례 과세 방식으로 인두세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당장 도입이 어려운 것으로 분석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저한세는 공제나 감면 과다를 방지해 과세 형평성을 높이려는 조치로 공제, 감면액이 큰 고소득자에게 주로 적용하고 있다"며 "영미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근로자 면세 축소를 위해 최저한세를 도입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특별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과 근로소득공제 축소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중·저소득층의 세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이 고려돼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조세연구원은 면세자 비율이 현재 체계를 그대로 유지해도 자연스럽게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금상승 등에 따라 연간 약 1.3%포인트~2.1%포인트 비율 축소를 예상했다. 임금상승에 따른 면세자 비율 하락으로 2019년에는 면세자 비율이 40%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2023년께에는 32% 수준인 세법개정 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