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5일 저소득층 대학생과 중ㆍ고등학생, 농어촌 지역 초등학생 등 8만4,000명의 교육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금융권에서는 국민은행이 현대차그룹 해비치재단과 손잡고 처리할 350억원 규모의 저금리 학자금 대출에 눈길이 쏠렸다. 국민은행이 해비치재단의 업무를 대행하는 만큼 현대차와의 거래 관계를 추가로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대차와의 거래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느냐"며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해비치재단 이사로 등재돼 있는 만큼 지주의 지원사격도 충분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은행의 대기업 금융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지금까지 '소매금융 강자'라는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대기업 부문 영역을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어서다. ◇1년 안 돼 대출 2조원 증가=국민은행의 11월 말 현재 대기업 대출잔액은 16조723억원으로 지난해 말(14조651억원)에 비해 2조원가량 늘어났다. 하나은행(19조2,395억원)보다는 모자라지만 전통적인 대기업 대출강자인 우리은행(17조3,380억원)을 바짝 뒤쫓고 있다. 이미 신한은행(14조6,357억원)을 추월한 실적이기도 하다. 국민은행의 경우 앞으로도 대기업 대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금융 주관사에 우리은행과 공동으로 선정돼서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1조2,5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주선하게 될 예정인데 국민은행은 6,000억~7,000억원가량을 SK에 제공할 방침이다. 그만큼 대기업 대출규모는 늘어나는 셈이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사회간접자본(SOC)이나 발전소 관련 대출도 크게 늘고 있어 대기업 금융이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국민은행이 금융주선을 한 제2경인연결고속도로 건설사업은 대출 규모만도 6,300억원에 이른다. 대기업 건설사들이 지분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여신은 대기업대출로 구분된다. 어 회장도 대기업 영업에 열심이다. 어 회장은 연초 삼성ㆍ현대차ㆍ신세계그룹 등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대기업 금융기반을 넓혔다. 특히 현대차그룹으로부터는 무역금융 일부와 거액의 퇴직연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소매금융만 갖고는 안 된다=국민은행이 대기업 대출을 확대하는 이유는 가계대출에 의존하는 성장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옛 주택은행과 합병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을 주로 해왔다. 11월 말 기준으로 전체 대출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4.9%에 이를 정도다. 반면 업계 2위인 우리은행은 43.4%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가계대출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1997년 외환위기를 넘기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지만 최근 들어서는 국민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KB금융지주가 신한금융지주보다 주가가 낮은 이유로도 가계대출이 많다는 점이 꼽힌다. 금융 당국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가계대출을 옥죌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민은행 입장에서는 대기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게 급선무다. 국민은행의 고위관계자는 "어 회장 취임 이후 대기업그룹을 신설하고 담당 부행장을 외부에서 영입했다"며 "그동안은 국민이 대기업금융이 약했지만 앞으로는 이를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