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안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국내 산업계가 협정 발효로 인한 득실을 꼼꼼히 따지면서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일단 자동차와 전자 등 대표적인 수출 업종은 협정이 발효 이후 전망되는 통상 마찰 해소 및 관세 인하로 인한 가격 경쟁력 제고, 교역량 확대로 인한 수출 인프라 확대 등을 기회 요소로 꼽고 있다.
또 이번 협상으로 인해 미국산 쇠고기, 돼지고기 및 과일에 대한 수입 관세가 낮아지거나 철폐됨에 따라 국내 소비자들은 앞으로 더 낮아진 가격에 미국산 육류와 과일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값싼 수입품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농업계의 피해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미 FTA가 내년부터 발효되면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분야로 자동차를 꼽을 수 있다. 승용차의 경우 내년부터 2015년까지 2.5%의 미국 수입관세는 그대로 유지되고 8%의 한국측 관세는 4%로 줄어들며, 2016년부터는 양측 전 차종에 대한 수입 관세가 철폐된다.
현대ㆍ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업계는 2.5%의 미국측 관세가 4년간 유지되기 때문에 이번 협정으로 인해 단기간에 급격한 수출 및 판매 증대 효과를 얻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4년 뒤인 2016년부터 미국 수입 관세가 없어지면 대미 수출에 상당한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관세가 없어지면 판매가를 낮출 수 있어 그만큼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업계는 아울러 협정이 발효되면 미국 통상 마찰이 감소하고 현지 소비자들의 한국차에 대한 인지도가 더 높아져 장기적으로 판매 증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부품의 경우 2.5~4%의 미국 관세와 최대 8%인 한국측 관세가 내년부터 없어지는데 이로 인해 국내 부품업체들의 대미 수출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국내 수입차 시장에 진출한 미국산 차들은 당장 내년부터 4년간 한국측 수입 관세가 4%로 축소되고 2016년부터는 관세가 폐지됨에 따라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판매 실적이 호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수입차의 경우 한국 시장에서 독일 메이커들을 필두로 한 유럽 브랜드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 수입차는 지난 2003년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16%에 달했으나 올해들어 9월까지는 5,938대가 팔려 점유율이 7%에 불과한 상태다.
전자업계는 삼성과 LG 등 주요 대기업은 대부분 북미에 현지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데다,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은 이미 무관세 혜택이 적용중이어서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FTA 타결로 교역량이 확대되면 전반적인 수출 인프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반응이다.
삼성전자측은 “멕시코에 TV 등 전자제품 생산공장을,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어 FTA 타결이 주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다만 FTA 타결로 교역량이 확대되면 전반적 수출 인프라에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이미 북미 시장에 공급하는 대부분의 제품을 멕시코 내 2개 생산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어, 기존 사업 구조에 큰 변동이 수반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한국에서 생산된 신제품 혹은 소품종 고급 제품의 경우 관세 혜택을 받게 됐고, 갑작스런 수요 급증으로 한국에서 부족분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경우에도 멕시코 생산과 동일한 관세 혜택을 받게 됐다”고 평가했다.
항공업계, 해운업계 등 운송업계도 협정이 발효되면 교역량이 늘어나고 그에 비례해 인적 교류도 활발해지는 긍정적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항공업계는 화물 물동량 비중이 가장 높은 미주를 오가는 수출입 물량이 늘어나면 화물 실적이 상당히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전세계 항공사 가운데 화물 수송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대한항공이 특히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업계는 또 교역량이 증가하는 만큼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인적 교류도 활성화돼 여객 수요도 함께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운업계 역시 FTA를 통해 전세계 물동량의 가장 큰 흡수처인 미국으로의 수출입 물자가 증가하면 해운 수요가 확대돼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분야는 제품 대부분이 무관세로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FTA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 다만, 자동차 등 철강 수요산업이 수출 증가 등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다면 그것에 맞물린 후방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우리 식탁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가 발효되기 전부터 미국산 쇠고기ㆍ돼지고기 수입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국내 식품 물가가 고공행진 하면서 그 증가폭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육류수출협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은 작년 동기보다 44.8% 늘었으며 돼지고기 수입량은 130.8%나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FTA 발효로 관세까지 낮아지거나 없어지면 미국산 쇠고기ㆍ돼지고기는 최대 강점인 가격 경쟁력에서 더욱 우위에 올라서게 돼 가정내 식탁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ㆍ미 FTA 발효시 미국산 쇠고기는 40%의 관세가 15년차까지 단계적으로 철폐되며 냉동 돼지고기는 25%의 관세가 2016년 1월 철폐된다.
미국산 과일도 관세가 낮아지는 만큼 값이 떨어져 판매가 늘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오렌지는 국산 감귤 비수확기인 매년 3월부터 8월까지 관세율을 낮춰 7년차에 철폐된다. 수입되는 오렌지의 상당 부분이 캘리포니아산이므로 국내 소비자는 그만큼 오렌지를 싸게 먹을 수 있게 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칠레, 유럽산 등에 뒤쳐진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은 국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게 된다. 업계는 FTA로 인해 미국 와인 수입가가 10% 가량 인하되고 수입량은 FTA 발효 첫해에만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칠레와 FTA를 체결한 직후인 2004년 칠레산 와인 수입은 통관 금액을 기준으로 전년 대비 173% 급증한 바 있다.
위스키 시장은 소비자 기호가 유럽산에 편중돼 있고 고가 제품 위주여서 미국산 제품이 저렴한 가격에 수입되더라도 판도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FTA가 발효되더라도 국내 소비자가 미국 유명 의류 브랜드의 가격 인하 효과를 누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갭, 폴로, 나이키 등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미국 브랜드는 대부분 제품을 아시아, 남미 등 미국 밖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런 제품은 관세 면제 대상이 아니다. 일부 명품 브랜드는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지만, 명품 브랜드는 비싼 가격대를 유지하는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관세 철폐분만큼 가격을 인하한다는 보장은 없다.
앞서 지난 7월 한-EU FTA가 발효된 이후에도 에르메스와 샤넬이 제품 가격을 소폭 인하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유럽 명품 브랜드에 대해서는 별다른 인하 효과가 없었다.
/온라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