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16일] <1371> Boys, Be Ambitious

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4월16일] Boys, Be Ambitious 권홍우 편집위원 영어에 약하다는 한국과 일본에서 뿌리를 내린 영문구가 하나 있다. ‘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품으라’는 뜻을 지닌 이 문구의 주인공은 윌리엄 클라크(William S Clark). 화학과 동물학을 공부해 매사추세츠대 농대 학장, 주 상원의원을 지낸 학자이자 정치가다. 클라크가 극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50세인 1876년. 농과대학을 키우려던 일본이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에게 전문가 파견을 요청해 홋카이도 땅을 밟았다. 처음에 뽑혔던 학자 케프론이 일본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간 터. 비록 대타였지만 클라크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학자이면서도 남북전쟁에 참전해 대령까지 지냈다는 전력이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에서 먹혔다. 삿포로농업학교(홋카이도대의 전신)의 설립 부총장으로 부임해 화학과 동식물학, 기독교 윤리학을 가르치던 그의 일본 체류기간은 불과 8개월. 짧은 재임기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학생들에게 일본식 식사를 전면 금지시키고 빵과 고기만 먹게 하는 등 서구식 사고와 생활방식을 강요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인도의 전통음식 ‘커리’를 변형한 ‘일본식 카레라이스’가 자리잡는 데도 ‘쌀은 커리와 같이 먹을 때만 허용한다’는 클라크의 방침이 한몫했다고 전해진다. 이임일인 1877년 4월16일, 그는 가까웠던 제자 10여명과 악수를 나눈 뒤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Boys, Be Ambitious!’ 클라크는 1886년 60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삿포로시에는 먼 곳을 향해 손을 뻗은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클라크의 다음 세대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성보다 중요한 것은 꿈이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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