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5개국(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지아 및 싱가포르 등)에 의해 67년에 출범한 ASEAN(동남아국가연합)은 동남아 지역의 평화, 정치적 안정 및 경제발전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ASEAN은 브루네이를 추가하여 그 규모를 1차로 확대한 후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반도 제국들을 흡수하여 현재는 10개국으로 크게 확대하였다.
풍부한 자원과 인구 등으로 상당한 성장잠재력을 갖춘 ASEAN은 또한 93년 1월 동남아자유무역지대(AFTA)를 창설했다. 이는 그동안 부진했던 역내 경제협력을 가속화하고 세계 경제의 블럭화에 대처하기 위한 매우 의욕적인 것이다.
이와같이 ASEAN은 그동안 동아시아지역의 대표적인 정치·경제적 협력기구로서 그 기능과 역할을 확대·강화해 왔고, 그 과정에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전세계의 예민한 관심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ASEAN의 그간의 활동이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AFTA의 경우만 하더라도 역내 산업특화의 전제조건인 자유경쟁체제의 미비, 국별 관세인하 계획의 투명성 결여 등 회원국들간의 이해상충과 강력한 리더쉽의 부재 등으로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아시아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잠재성장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고, 외환위기 극복 이후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 의욕에 불타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이 지역에 대한 최대 이해관계국들인 동북아 3개국, 즉 한국, 일본 및 중국이 ASEAN 10개국들과 정상회담을 갖고 중요 협력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했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 것임에 틀림없다.
「아세안+3개국」 정상회담의 가장 핵심적 의의는 그것이 앞으로 동아시아의 획기적인 「경제적 벨트」를 구축하는데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모임은 일찍이 말레지아의 마하티르 수장이 제의했던 동아시아 경제회의(EAEC)를 연상케 한다. ASEAN이 이 모임의 중심이 되고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및 홍콩이 이에 포함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이 제의는 그러나 환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는데, APEC 창설국들인 미국, 카나다, 호주 및 뉴질랜드를 제외함으로써 APEC과의 관계가 미묘하여 미국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고, 그에따라 한국과 일본의 입장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제의는 더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이제는 세계경제상황이 당시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세계 경제의 블럭화가 크게 진전되었고 APEC 또한 그 나름대로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 그 뿐만 아니라 방대한 APEC내에서의 역내협력의 한계성이 또한 보다 분명히 표출되고 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게 됨으로써 동아시아지역 내 각종 무역 및 산업정책의 투명성이 크게 제고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점은 최근의 외환위기를 통해 이 지역의 경제적 실패는 세계경제전반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과 지역내 평화와 정치적 안정이 이룩됨에 따라 역내협력이 경제협력으로 집중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아세안 10개국들과 한·중·일 3개국들간의 협력모색은 그것이 APEC의 취지와 기능을 저해하지 않는 한 실효성있는 동아시아 협력체제로 발전될 충분한 동기와 명분을 갖고 있다.
「아세아+3국」 정상회담은 또한 한·중·일 동북아 3개국의 협력체제 구축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지리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크게 인접해 있으면서 3자간의 공동협력기구가 결여되어온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이러한 장애요인들을 극복하고 참된 협력체제를 구축해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한국의 취지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역내 통화가치 안정과 분업체계 확립 등 수 많은 주요 과제들에 대한 이견을 조정하고 합의를 도출해 가는 과정에서 한국측의 현명한 접근과 치밀한 연구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이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한국측에 주어진 핵심과제인 것이다.
/朴振根(연세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