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정건전성 강화와 민생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야심 차게 마련한 내년도 세제개편안이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며 장기주택마련저축에 대한 소득공제 폐지안을 사실상 거둔 여파가 잠재워지기도 전에 우군이어야 할 한나라당이 법인ㆍ소득세 감면 조치를 2년간 유예하는 방안까지 들고나왔다. 여기에 장기주택마련저축을 비롯해 여러 증세 방안이 정부의 공언처럼 고소득자가 아닌 서민ㆍ중산층에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마련한 증세안 대부분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등장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제2의 장마저축'이 될 개연성이 있는 부분을 크게 5가지로 압축해 짚어봤다. ①소득ㆍ법인세 인하 유예=소득ㆍ법인세 인하안이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다. 정부의 이번 세제 개편안도 이를 상정해 마련됐다. 그런데 여당이 이것을 사실상 뒤집었다.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내년부터 적용될 법인ㆍ소득세 추가감면 조치를 2년간 유예하자는 의견이 있고 그것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책 일관성과 신뢰 문제를 들어 '당 일각의 문제제기' 수준에서 논의되던 문제가 향후 조세개편 논의의 핵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문제는 법인ㆍ소득세 추가 감면이 유예될 경우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마련된 제도의 뼈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 특히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 ▦대법인 최저한세 강화 ▦총급여 1억원 초과 근로자 근로소득세액공제 폐지 등 정부가 마련한 재정건전성 강화 대책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법인ㆍ소득세 인하가 예정대로 이뤄져 세부담이 줄어든 대기업ㆍ고소득자에게 별개 세목별로 과세한다는 논리였는데 자칫 소득ㆍ법인세 부담은 유지되고 공제만 폐지돼 오히려 지난 정부 때보다 세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지지기반을 흔들 수 있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에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②부가가치세 부과=정부는 이번 개편안에서 과세 투명성과 세수 확보를 위해 부가가치세 문제를 꺼냈다. 그런데 이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성형수술ㆍ영리학원에 대한 부가세 부과는 자칫 물가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핵폭탄이다. 당장 소비자들은 해당 서비스에 대가를 지불하며 10%를 더 내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금 부담은 몇몇 항목에 제한됐지만 물가는 유사 서비스에까지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학원의 경우 무도학원과 운전학원에 대해서만 과세하기로 했지만 음악학원ㆍ어학학원 등 성인 대상의 비슷한 영리 목적 학원이 10% 안팎에서 가격을 인상할 경우 정부는 제재할 방법이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밀어붙일 수 있을지 미지수다. ③공모펀드 증권거래세 부활=한나라당이 공모펀드 증권거래세 면제 폐지에 난색을 보인다는 점이 큰 부담이다. 공모펀드 가입자들이 수익률 하락을 이유로 정부안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일단 공모펀드 거래세의 경우 과거처럼 면제해주기는 어렵지만 굳이 0.3%를 고집하지 않고 탄력적으로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에 0.1%의 거래세를 붙인 것처럼 세율은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과 외국인이 0.3%의 거래세를 적용 받는 상황에서 기관에 대해서만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공평한 룰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④월세 소득공제ㆍ임대 소득세=서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월세 소득공제나 다주택자에게 세부담을 지우는 전세 임대소득세가 되레 서민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세 소득공제의 경우 연소득 3,000만원 이하 근로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하지만 소득공제를 증빙해줘야 하는 집 소유주의 입장에서는 세원이 그대로 드러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늘어난 세부담을 세입자에게 지울 경우 자칫 소득공제를 받으려다 월세가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양도세 예정신고세액공제 폐지 역시 사실상 성실 납부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양도세를 10% 더 부담 지울 수 있어 반발이 예상된다. ⑤가전제품 개별소비세 부과=정부가 다용량 에너지 다소비품목인 에어컨ㆍ냉장고ㆍTVㆍ드럼세탁기 등에 개별소비세 5%를 5년간 한시적으로 과세한다는 점 역시 소비자들의 반발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개소세의 전신인 특별소비세가 사치조장품목에 대한 과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에서는 늘어난 재원으로 저소득층의 에너지 고효율 제품 구매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 부과하는 품목이 사실상 국민의 생활필수품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전 업계가 가격인상 효과를 들어 강력 반발하고 있고 민주당 등 정치권에서도 반대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