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아닌 죄' 어느 경찰관의 수필
"검거 안 하자니 직무유기, 검거하자니 수배자 가족 걱정"
"검거하지 않으면 직무유기가 되고 검거하자니 수배자 가족의 생계가 걱정돼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최근 전국 경찰을 대상으로 한 `경찰 문화대전'에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죄 아닌 죄'를 출품, 수필 부문에서 은상을 차지한 울산 서부경찰서 안성두(37) 경장은 잊혀지지 않는 2000년 어느 추운 겨울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 경장의 수필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벌금 200만원을 못내 수배자가 된 30대 가장을 연행하면서 느낀 인간적 고뇌를 담았다. 그의 글이 경찰조직에서 화제가되면서 동료경관 사이에 `경찰의 임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들고 있다.
안 경장의 가슴 아팠던 경험담은 그가 울산 언양지구대에 근무하던 5년 전 어느겨울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안 경장은 "이웃에 수배자가 살고 있으니 와서 잡아가라"는 신고를 접했다.
안 경장은 차 한대도 들어가기 힘든 남루한 주택가 골목에서 수배자가 눈치채지못하도록 무전기 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신고받은 주소를 찾아 헤맸지만 미로처럼 꼬인 골목길에서 원하는 수배자의 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마침 구멍가게에서 술을 사서 나오는 한 30대 남자에게 자신이 찾고 있는 주소를 물었으나 술에 취한 이 남자는 `모른다'는 대답과 함께 콧노래를 부르며 그냥 지나쳤다.
30여분간 동네를 헤매다 마침내 수배자의 집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뒤에서 "누구요"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바로 구멍가게에서 마주친 그 남자였고, 휴대전화 조회기로 확인한 결과 공교롭게도 벌금 200만원을 내지 못해 수배된 상태였다.
집 안에는 8∼9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둘 있었다.
아이들은 안 경장이 아버지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도 모르고 "경찰관 아저씨다!"라고 소리치며 반갑게 인사했다.
수배자는 노동일을 하다 교통사고로 다쳐 몇달을 놀게되자 아내가 할 수 없이인근 식당으로 일을 나갔고 자신은 가까스로 건강을 되찾아 며칠전 친구 도움으로실업자 생활을 끝내고 농공단지에 취업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안 경장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었다"며 "수배자임을 알고도 검거하지 않으면직무유기가 되고 검거하자니 수배자 아내와 아이들의 생계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고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차라리 구멍가게 앞에서 마주쳤을 때 슬쩍 도망이라도 칠 것이지 태연히돌아선 그가 원망스럽기도 했다"며 가슴아팠던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수배자를 데리고 나오며 집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바람에 날리는 낡은 커튼 옆에서 힘없이 끌려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두 아이의 해맑은 눈망울을 보고서는 가슴 한켠이 시려왔다는 것.
안 경장은 "대문을 넘는 고달픈 노동자의 단화를, 초롱초롱하던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며 "내가 한 일에 사명감보다 자격지심과 죄책감이 더 오래 앙금으로 남았다"고 적었다.
그는 "오늘 세상 걱정없이 행복해 보이는 내 아이들을 보며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지난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죄 아닌 죄'를 지으며 살아야 하는 나 자신이 두려워 두 눈을 꼭 감은 채 한없이 도리질을 쳤다"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현 기자
입력시간 : 2005/10/10 0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