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2월13일, 런던이 공포에 떨었다. 콜레라 감염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처음 발생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독일 지역을 휩쓴 콜레라도 섬나라인 영국에는 넘어올 수 없다고 믿었던데다 겨울철은 안전하다고 여겨왔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우려대로 런던에서만 7,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도 갠지스강 유역의 풍토병이던 콜레라를 퍼트린 요인은 세계화. 1817년 캘커타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일주일 만에 5,000여명이나 사망한 후 콜레라는 국경을 넘었다. 유럽 대륙과 영국을 경유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전염되고 남미에서는 아예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다.
무엇보다 무서웠던 점은 주기적인 발병. 1838년 영국에서 재발한 콜레라는 1만4,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구촌 역시 19세기 후반기 내내 콜레라에 시달렸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발병사례 중에서도 영국이 주목 받는 이유는 두 가지. 어느 나라보다 전염속도가 빨랐으며 치료방법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왜 빨리 퍼졌을까.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도시빈민의 생활여건이 크게 나빠진 탓이다. 콜레라가 불결한 환경에서 오염된 물로 전염된다는 사실을 영국이 가장 먼저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생활환경이 열악한 공장 근처에 모여 사는 도시빈민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콜레라 퇴치방법인 식수원 정비와 분류하수관망 건설이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콜레라의 참상은 인구론을 주창한 경제학자이며 목사이자 신자유주의의 뿌리격인 맬서스가 사회발전을 위한다며 제시한 처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구억제를 위해 빈민층의 결혼과 출산을 억제하고 빈민가를 더 좁고 더럽게 만들어 질병이 창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던 맬서스의 수명이 좀 더 길었다면 다른 처방이 나왔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