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한민국의 아픈 과거사 모두가 공유 했으면…

■ '남영동 1985' 연출 정지영 감독<br>미학적인 측면 보다 무엇을 그릴까 고민<br>모든 영화는 정치적 표현 방법만 다를 뿐 연출자의 사상 담겨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고문 기록을 담은 영화'남영동 1985'는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을 때만 해도 공식 개봉이 불투명했다.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65·사진)은 배급사가 결정되지 않으면 직접 배급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반응은 뜨거웠고,'남영동 1985'는 영화 수입·배급 전문회사인 엣나인필름을 만나 오는 22일 관객을 찾게 됐다. 개봉을 앞두고 지난 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정 감독을 만나 열일곱 번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래 전 소설'붉은 방'을 읽고 고문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정 감독은"고문이라는 소재를 통해 대한민국의 아픈 과거사를 국민 모두가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야 법조인 시절 쓴'야만시대의 기록'과 '진실의 힘'(고문 피해자 치유 모임)이라는 단체에서 펴낸 책과 많은 이들의 고문 증언을 토대로 영화화했다"고 회고했다. 영화는 끝머리에 재야 민주화 운동 출신의 전ㆍ현직 정치인과 일반인들이 겪은 실제 고문피해 증언이 더해지며 다음 세대가 극복해야 할 아픈 현대사의 그늘이 무엇인지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정 감독은 이들로부터 처참한 당시의 아픔들을 들으며 가슴 아팠던 일화를 꺼내놓았다."'진실의 힘'에 가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객석에 앉아 들은 적이 있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용서'에 대해 질문을 건네려고 했지만, 목이 메어서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고문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고문이 어떻게 한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파괴하는지 정공법으로 보여준다. 정 감독은"정지영의 영화는'무엇'이 있고'어떻게'가 있다. 미학적 측면보다는 무엇을 그리냐를 많이 고민한다"고 자신의 연출 방식을 정의했다.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정치적인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서도 노장 감독은 망설임 없이 소신을 밝혔다."모든 영화는 정치적이고, 연출자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담아내느냐의 차이죠."


극 중 고 김근태 고문을 연기한 배우 박원상은 한 인터뷰에서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봐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표하기도 했다. 정 감독 역시 박원상의 바람과 뜻을 같이 하는 듯 보였다."지금의 젊은이들이 순치(길들여지는 것)돼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렵게 이뤄낸 민주주의가 훼손돼 가는데도 내 일이 아니라 침묵하고 방관하고 있는데, 그건 젊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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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1985'에 이어 정 감독은 내달 6일'영화판'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달아 관객에게 선보인다. 예순 다섯의 노장 감독, 그럼에도 여전히 날 선 눈으로 현장에서 함께하는 그에게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감독을 포함해 무언가 창조해 내는 사람들의 기본 속성은 늘 대상의 새로운 측면을 보려고 하는 점이죠. 그러니 사고가 진보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영화를 통해'이렇게는 생각해 볼 수 없어?'라는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자그마한 역할은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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