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된 금융 용어를 사용하라고 금융사에 요청했으나 일선에서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판단 때문.
내년부터는 금융용어 개선에 소비자 의견도 적극적으로 반영해 우리말 사용 비중을 늘릴 방침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은행, 보험, 카드 등 금융사의 거래 표준약관 가운데 어려운 금융 용어 114개를 개선하기로 하고 금융사에 지도 공문을 발송한 데 이어 조만간 시행 여부에 대해 대대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 용어 중에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 사례가 많아 소비자가 불편을 겪어 쉬운 우리말이나 풀어 쓰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면서 “조만간 순화된 용어를 금융사들이 약관 등에 제대로 반영하는지 점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매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 쓰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나 돈이 오가는 금융권에서는 아직도 난해한 한자어와 외래어가 범람하는 게 현실이다.
금감원이 순화된 용어를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적극적인 점검으로 금융사가 조속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어려운 금융 용어는 고객의 이해도를 떨어뜨려 보험이나 증권 등에서 불완전 판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동양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불완전판매 사태 또한 증권 관련 어려운 금융 용어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증권 펀드를 구매한 소비자 500명에게 펀드 명칭을 통한 상품 이해도를 조사한 결과, 주된 투자 대상을 펀드 이름으로 알 수 있었다는 응답률은 29%에 불과했을 정도다.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전문금융협회, 금융투자협회 등이 나서 표준약관 개정 시 순화된 금융용어를 반영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일부 금융사들이 개별 금융 약관, 상품 설명서, 공시 자료를 수정하고 있으나 미진하다는 평가다.
금감원이 이번에 금융사에 개정을 권장한 용어는 개비(開扉)→열다, 상위(相違)하다→서로 다르다, 양안시(兩眼視)→두 눈을 뜨다, 해태(懈怠)하다→게을리하다, 당발 송금→해외로 보내는 외화 송금, 원가(元加)하다→이자를 원금에 가산하다, 회보(回報)하다→답을 알려주다, 캐스트료→석고붕대료 등이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용어 하나 바꾸자고 약관을 개정할 수는 없어서 나중에 개정 사항이 쌓이면 한꺼번에 할 계획”이라면서 “업계 공통으로 바뀌는 약관이 아니면 기존대로 용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최근 홈페이지에 국민 제안 코너를 신설해 소비자들이 어려운 금융 용어 개선을 직접 건의할 수 있도록 했다. 주기적인 설문 조사도 실시해 금융용어 순화를 시도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내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전면적인 금융용어 수정 작업을 할 계획”이라면서 “내년에는 소비자의 건의도 반영해 실질적인 효과가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영어로 뒤덮인 상품명을 개선하려는 금융권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교보생명 ‘남다른 노후를 위한 교보 100세 연금보험’, 한화생명 ‘가족사랑준비보험’, 삼성카드 ‘숫자 시리즈 카드’, 국민카드 ‘혜담카드’ 등이 대표적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한글로 상품명을 설명하려면 길어지는 경향이 있어 영어를 선호했다”면서 “최근 상품명에 명확한 설명을 담으라는 감독당국의 요청이 있어 되도록이면 우리말 상품명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