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대북사업의 과제

최근 북한이 현대를 이용할 대로 이용하고 내팽개치는 모습을 보고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역사적인 소떼방북으로 시작된 현대의 대북투자 규모와 행태는 실로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중단기적으로 수익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사업을 위해 공식적으로 북한에 준 돈만 해도 1조원이 넘고 비공식적인 뒷돈의 규모는 알 수조차 없다. 여기에는 물론 일반적인 사업적 판단을 넘어선 정주영 회장의 통일에 대한 개인적 열망과 정부의 막대한 대북경협자금 지원,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이용 등이 작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무모한 대북투자 때문에 현대가 입은 피해는 실로 막대했다.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을 포함한 세계적 계열사들의 부도와 기업 해체, 대북송금 특검 수사, 정몽헌 회장의 자살, 아직 갚아야 할 막대한 부채가 대북투자로 얻은 현대의 전과물이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과 정몽헌 회장마저 떠나고 없는 지금 북한은 당시의 계약을 헌신짝 버리듯이 던져버리고, 심지어는 다른 남쪽 기업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더욱이 참여정부는 현대가 어렵게 따낸 7대 사업 독점권을 남북교류협력법 밖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현대가 잃은 것도 많지만 북한 또한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북한은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계약과 신뢰를 합당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깨뜨렸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행위는 앞으로 상당 기간 한국 기업뿐 아니라 외국 기업들의 대북투자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모한 대북경협과 대북원조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인내심에 한계를 불러올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비합리적인 대북 퍼주기가 남북 긴장완화와 통일비용의 선지불이라는 논리로 합리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는 대북사업 원칙을 원점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 측이 도와주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정부ㆍ기업ㆍ대학ㆍ시민단체를 포함해 우리끼리 도와주기 경쟁을 하고 뒷돈 거래는 물론 심지어 북측의 눈치까지 보는, 말도 안 되는 관행을 차제에 근절해야 한다. 초기에는 여유 있는 쪽이 대화의 물꼬를 트고 베푼다는 대승적 입장에서 잘못된 관행을 참고 지나갔지만 이제 그 효과를 따져볼 때가 됐다. 우리의 일방적인 조치가 얼마나 북한 사회와 경제를 개선시켰고 북한 민초의 생활고를 덜어주었는지를, 그리고 대남 적대 태도를 변화시켰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정부는 대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하고, 특히 기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현대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벨상 수상을 위한 희생양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1,000개가 넘는 우리 기업이 개성공단을 포함해 북한에 투자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둘째, 기업은 앞으로 단기적인 수익을 낼 수 없는 대북사업에 절대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북한 정부와 맺은 계약이 반드시 이행될 수 있다는 안전장치가 강구되지 않는 한 함부로 투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남한 정부나 기업과 맺은 계약을 반드시 이행함으로써 시장에서의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이와 더불어 북한은 이른 시간 내에 시장경제 원리와 관행에 적응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을 돕고 투자하는 이유는 북한 주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보다는 북한에 시장원리를 가르쳐 단기적으로는 북한 경제를 살리고 중장기적으로는 통일에 대비해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려는 바람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이 단기적 이익에만 집착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자립능력을 키우는 것에 관심이 없다면 대북경협은 재고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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