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23일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업체에 고용됐지만 실제로는 현대차 공장에서, 직접 현대차의 노무지휘를 받으며 일했던 최모씨에 대해 2년 넘게 불법파견 근로를 했으므로 2년이 지난 때부터 원청회사인 현대차와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됐다고 판결했다. 노동계는 즉각 사내하청 즉각 폐지 및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와 경영계는 사내하청근로자 중 상당수가 적법한 도급이지 불법파견이 아니므로 2년 넘게 근무했다고 정규직 전환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법원의 판결이 고용시장/관행과 관련 법/제도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두 전문가의 견해를 정리한다.
●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오랫동안 암묵적 불법행위
준법경영·공정사회 지켜야
지난 2월23일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정을 확정했다. 놀랍거나 갑작스러운 판결은 아니다. 이미 2004년 노동부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활용이 불법파견이라 했다. 기아차ㆍ동희오토ㆍ현대하이스코ㆍGM대우ㆍ현대중공업 등에도 똑같은 판단을 내렸지만 제조업만이 아니라 서비스업과 공기업에까지 사내하청이 퍼졌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 병원은 사내하청이 정규직의 67%로 절반을 넘어섰으며, 모 공기업은 정규직 대비 사내하청이 700%에 이른다. 법원에서도 2008년부터 유사 사안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으나 바뀐 것은 거의 없어 2010년 11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근로자 1,940명과 2011년 7월 기아자동차 사내하청근로자 574명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따라서 판결을 번복한다면 되레 그것이 이상하고, 판결에 놀란다면 그것이 되레 과하다 하겠다.
법원의 판결은 준법경영을 하라는 뜻이다. 사용자는 근로자를 부리고(使) 쓰는(用)자(者)이다. 소나 말도 아닌 사람을 부리고 쓰도록 허용한 것은 사용자가 헌법과 노동법에 따른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옛날 지주가 소작을 부칠 때 중간에 마름을 끼워 일을 진행하는 것처럼 중간에 하청업체를 끼워 노동자를 부리는 사내하청은 사용자가 헌법과 노동법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파견과 적법하청에 대한 판단기준을 두고 사내하청을 규제한다.
이유는 실컷 부린 후 '생일날 잡아먹는'불편타당한 일을 없애고, 지주의 마름질과 원청의 사내하청 활용을 구분해 현대적 시장에서 공정 경쟁을 하기 위해서다. 이는 현대국가의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노동기본법을 준수하는 준법경영, 헌법상의 인권을 보장하는 공정사회를 주문한 것이다. 현행 파견법 제5조 2항에 따르면 일시적인 업무일 경우 지금도 제조업에서 파견근로를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법에서 고용유연성을 보장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불법 행위를 한 것이니, 만약 기업의 손을 들어준다면 지주-마름-소작의 조선시대로 복귀하자는 것이겠다.
또한 법원의 판결은 현 정부 출범 당시 공약인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의 목표와도 부합한다. 지난 5년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이며, 같은 시기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200만원 정도이다. 4만달러면 대충만 계산해도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400만원이 돼야 한다. 하지만 정규직의 반값으로 사내하청이나 비정규직을 쓸 경우 4만달러는 불가능하다. 월평균 급여 400만원 이상의 근로자가 전체의 10% 남짓인 현 상황을 크게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은 2만달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근로자와 국민의 생일은 없는데 특정 기업이 1위라고 초를 환하게 밝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난 10년간 연평균 기업소득증가율이 16.5%인 반면 가계소득 증가율은 2.3%이고, 내수위축과 양극화가 걷잡을 수 없는 현실을 바꾸려면 법원의 판결을 기회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비용이나 유연성을 거론하거나 생산기지를 옮기겠다는 주장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준법경영을 표명하고 국민과 사회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순서이겠다.
●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내하청 적법 범위 모호
인력 유연성 확보가 시급
대법원의 사내하청판결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이 판결 하나로 사내하청근로자들에게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큰 희망을 준 반면에 기업으로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력유연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큰 고민거리를 안게 된 것이다. 다만, 그에 앞서 이번 대법원 판결을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마치 제조업 사내하청 전체가 불법파견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동의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라면 도급이 아니라 파견으로 보겠다는 것이지, 제조업의 사내하청을 모두 파견으로 인정하겠다는 취지로 판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원이 이 사건에서 말하고자 한 바는 하청근로자가 원청근로자와 혼재 배치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원청회사로부터 동일한 지시를 받을 경우에는 근로자파견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밖에 함께 언급된 요소는 위의 사실을 확인하는 보조지표로 판단한 듯하다. 그렇지만 대법원의 판결에도 유감스러운 부분이 있다. 사내하청의 적법한 범위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정상적인 사내하청까지 불법시돼 결과적으로 근로자들의 무분별한 남소(濫訴)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견과 적법한 사내하청의 경계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는 선을 그어야 할 필요가 발생했다.
제조업의 사내하청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십년간 진행된 구조적 관행이라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법원의 의도와 관계없이 파견제도를 포함해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다. 경제환경의 가변성이 심화되고 경기변동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기업으로서도 인력운영의 유연성을 사내하청이나 파견과 같은 제도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인력운영을 막다른 길로 몰고 가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실제로 독일의 자동차회사들도 통상 10~20%의 파견근로자를 생산라인에 투입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비정규, 사내하청근로자들의 불합리한 근로조건의 차별과 격차 해소와 기업의 경쟁력유지를 통해서 경제 전체의 활력을 도모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 양자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시급히 검토돼야 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현행 파견법은 좀 더 유연하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파견금지는 이제는 풀어야 할 과제이고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개선 및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상용형 파견의 활용을 촉진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파견제도가 확대되더라도 사내하청과의 관계는 계속해서 문제가 될 것이므로 언제까지 법원에만 맡겨둘 것인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현행처럼 추상적 기준만 두고 법원이 사안별로 판단하게 한다면 탄력적인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하나의 사건이 특정 협력업체에 속하는 근로자 전체의 소속변경, 사용자교체의 결과를 낳게 되므로 기업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기업경영의 안정성과 근로계약관계의 명확성을 위해서는 법원이 근거해야 할 기준에 대해 좀 더 구체화한 다음 법정화할 필요가 있다. 이미 고용노동부는 두 차례에 걸쳐 파견과 도급의 구별에 관한 지침을 작성한 바 있으므로 세부적인 논의를 거쳐 그 지침을 법규 명령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사내하청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방안도 함께 고려하면서 파견과 사내하청의 관계를 조화롭게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