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하벨 前 체코 대통령이 남긴 것


영웅이 사라져가는 이 불행한 시대의 마지막 영웅 바츨라프 하벨 체코 전 대통령이 김정일보다 하루 먼저 서거했다. 서방의 많은 언론들이 두 사람을 대비하면서 김정일이 표상하는 가치의 대척점에서 하벨을 추모했다.


그는 민주주의ㆍ자유ㆍ인권을 위한 투사로서 "진실과 사랑이 거짓과 증오를 이긴다"는 신념을 평생토록 지켜왔다. 벨벳 혁명을 이끌며 소련으로부터 체코슬로바키아를 독립시켰고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를 평화적으로 지휘했으며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10년간 재임하면서 도덕적 권위로서 세계의 민주화, 인권과 자유의 신장을 위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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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서 하벨은 위대했다. 그러나 정치인이기에 앞서 그는 동유럽을 대표하는 극작가였다. 필자는 이 하벨이 정치 무대를 떠나 연극계로 복귀하기까지 20년의 침묵을 깨고 첫 작품으로 발표한 '떠난다는 것'을 보기 위해 지난 2008년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극은 여성편력이 심한 한 정치 지도자가 권력을 이양한 뒤부터 겪는 갖가지 상실과 참담함을 다루면서 정치적 삶과 개인적 존재의 부조리를 절묘하게 희화했다.

필자를 초대한 주최 측의 주선으로 공연이 시작되기 전과 인터미션 때,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 하벨 전 대통령을 극장의 카페에서 따로 만날 수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지만 그는 거인이었다. 길게 줄을 짓고 다가오는 관객들에게 일일이 하트를 그려주며 사인해주는 하벨의 모습에서 나는 그가 국민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국민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우리는 대한민국을 5년간 이끌고 갈 지도자인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한꺼번에 뽑는다. 한국 정치의 불행은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인도 없고 국민에게 존경 받는 정치인도 없다는 데 있다. 표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정치인들, 무능과 비겁과 비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부도덕한 인사들을 또 뽑아서는 우리의 정치적 불행이 계속된다. 거짓이 판치는 이 타락한 시대에 하벨처럼 진실을 외칠 수 있는 용기 있는 정치인, 증오가 더 효과적인 소통의 수단이 돼 있는 이 야만적 시대에 하벨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도덕적 정치인, 분열과 대립의 정략이 더 주목 받는 이 살벌한 시대에 하벨처럼 타협과 화해를 일궈낼 수 있는 유능한 정치인, 그런 정치인들을 우리 손으로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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