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혼란 부른 '쉬운 수능'

“문제를 이렇게 낼 거라면 시험이 쉬울 것이라는 얘기는 왜 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배신감마저 느껴집니다.”

지난 7일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한 수험생은 수능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속은 기분이 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비단 시험을 못 본 한 학생의 얘기가 아니다. 수능 시험일 바로 다음 날인 8일 고등학교 3학년 대부분의 교실은 마치 초상집과 같았다는 게 현장 교사들의 전언이다.


실제 평가원은 수차례에 걸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쉬운 수능 기조를 유지할 방침임을 강조했다. 김경훈 수능 출제본부장은 9월 모의평가 채점결과 발표 이후 기자들과 만나 “2012학년도 수능부터 적용돼온 쉬운 수능 기조를 올해도 유지할 것”이라며 “2014학년도 수능은 6월ㆍ9월 모의평가와 비슷한 난이도 수준으로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야지만 수험생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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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평가원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시험은 어려웠다. 특히 어렵게 출제된 문제는 중ㆍ상위권 학생들조차 손도 대지 못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EBS 연계도를 높게 유지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겠다던 평가원의 얘기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수치상으로는 연계율을 70% 이상 가져가겠다던 약속을 지킨 듯 보인다. 영역별 EBS 연계율이 국어 71.1%, 수학 70.0%, 영어 71.1%, 사회탐구 71.0%, 과학탐구 70.0%, 직업탐구 70.5%, 제2외국어/한문 70.0%니 말이다. 하지만 주로 난도가 높은 문제를 EBS 교재에서 내지 않은데다 EBS와 연계된 문제마저도 상당 수준 변형을 가해 학생들의 EBS 연계 체감도는 크게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를 무조건 쉽게 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변별력을 갖기 위해 시험 난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쉬울 것이라던 수능이 어렵게 출제됐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평가원의 얘기를 믿고 기본적인 내용을 공부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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