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에 긷든 선친의 애국정신을 주위 사람들에게 그저 전해줄 뿐 입니다. 앞으로 두 아들도 대를 이어 동참하겠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
십 여년째 거리에서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는 김상철(68) 타이거스포츠 대표이사는 반세기 동안 담아왔던 선친의 유지(遺志)를 실천에 옮길 뿐이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김 대표는 매년 3ㆍ1절과 광복절이면 어김없이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대규모 국제행사 때도 태극기 나눔 행사를 어김없이 펼쳤다.
올해 3ㆍ1절에는 차량용 소형 태극기 2만기를 준비했다. 평소에도 차 안에 부착하고 다닐 수 있도록 특수 제작했다. 플라스틱 깃대용 금형 제작비 800만원을 비롯해 모두 2,000만원 가량 사비를 털어 마련한 것이다.
김 대표가 태극기 나눔 행사를 펼치게 된 동기는 선친의 유지 때문이다. 항일운동을 하다 옥고까지 치렀던 선친은 해방이 되자마자 인근의 일장기를 모두 수거한 뒤 태극과 4괘를 그려 주민들에게 나눠주면서 자신에게 태극기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나눠주라는 뜻을 전한 것이다.
김 대표는 “항일운동으로 가세가 기운 탓에 먹고 살기 바빠 선친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지만 항상 마음속에는 품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5ㆍ16 혁명 당시 우여곡절 끝에 중위로 예편한 그는 고 함석헌 선생과의 친분을 이유로 이어진 정치권의 탄압과 사업실패로 고전하면서도 틈틈이 태극기를 사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김 대표가 본격으로 태극기 나눔 행사를 펼치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91년. 길거리에서 파는 소형 태극기를 우연히 보고는 수소문 끝에 찾은 종로 국기보급소에서 1,100기를 사게 된 게 계기였다.
지난해 월드컵 기간에는 차량용 소형 태극기 5,000기를 별도로 제작해 나눠줬다. 평소 김 대표의 나라사랑에 감명 받은 인근 육군 체육부대 체조감독과 선수들이 직접 거리에 나섰으며 인근 중학교 학생들도 동참했다. 학생들이 태극기를 모두 나눠준 뒤 더 없냐고 물을 때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음료수를 들고 찾아왔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그러나 가끔 무료로 건네주는 태극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코웃음 치는 이들을 만나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새로 출고되는 모든 차량에 태극기 깃대를 의무적으로 부착해 모든 차량이 국경일이나 국제적인 행사 때 태극기를 꽂고 다니는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이를 위해 힘쓸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경제적인 도움보다는 사단법인을 설립해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태극기 나눔 행사를 펼치고 싶다”며 “모든 차에 태극기를 달게 하려면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장남인 태용씨(35ㆍ경원대 언론정보학부 부교수)는 “어렸을 적 `좋은 일을 하고 계시는 줄 알았지만 굳이 아버님이 나설 필요가 있을까`생각했지만 9년 여 유학생활 이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태극기 나눔 행사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성수기자 ss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