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 3주가량 이어져온 가파른 엔화약세 흐름에 급브레이크를 건 것은 더 이상의 엔저가 일본 경제에 플러스보다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라는 아베 신조 정부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과도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환율에 대한 경고는 이미 아베 정부에서 간간이 제기돼왔다. 지난달 미일 재무장관 회담 이후 아소 다로 재무상은 엔화가 "거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경계감을 내비쳤다. 아베 총리도 8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폐막 후 기자회견에서 "(환율은) 경제 펀더멘털에 따라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엔저에 따른 원자재 수입비용 부담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악영향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아베노믹스'의 최대 무기로 꼽히는 엔화약세는 지금까지 일본 수출기업의 실적개선과 경기회복에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25엔을 넘나들 정도로 엔화가 과도한 약세를 보이자 아베 정부 입장에서도 원자재 수입가격 급등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앞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외환시장의 과도한 쏠림 현상이 기업과 가계에 부담을 주고 국내외 투자에도 영향을 미쳐 일본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급격한 엔화약세가 지속될 경우 일본이나 미국 정부에서 강한 경계 발언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10일 구로다 총재의 발언은 정부가 내비친 일련의 메시지에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 시장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한 사실상의 고강도 구두개입으로 풀이된다.
이날 구로다 총재의 구두개입으로 지난달 이후 빠르게 진행돼온 엔화약세에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엔화가치는 지난달 22일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친 후 미일 간 금리격차가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가파른 하락세를 이어왔다. 시장에서는 연내 엔·달러 환율이 130엔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옐런 의장이 푼 엔저의 고삐를 구로다 총재가 잡은 셈이다.
다만 구두개입 효과가 지속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최근 엔화 매도에 앞장섰던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들이 다시 매도 공세에 나설 여지는 남아 있다. 스즈키 겐고 미즈호증권 수석 외환전략가는 "일본 당국이 엔저를 견제하고 있는데다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도 낮아 당분간 125엔대 재진입은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올 하반기 이후 연준의 금리 인상 방침에는 변함이 없는 만큼 엔저 추세가 재연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