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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일단 미국의 금융제재는 피할 수 있게 됐지만 이란산 원유를 계속 들여오고 수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EU)의 벽을 넘어야 한다. EU가 오는 7월1일부터 이란산 원유를 수송하는 모든 운송수단에 보험 제공을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EU와 협상을 계속 벌이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도 이번달 들어서는 이란산 원유 수송을 위한 유조선을 띄우지 않고 있고 있는 상황이다. 최종적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이 끊기면 국내 중소기업도 수출길이 막힌다.
◇EU 재보험 문제, 모스크바 회의가 분수령=정부는 EU의 원유수송선에 대한 재보험 불가 정책이 확정될 경우 국내 기관에서 이를 대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조선 사고시 복구비용 등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될 수 있어 국책은행이나 단일기관이 맡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다. 국책은행의 경우 재보험을 제공하면 당장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P5+1(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과 이란 간 협상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여기에서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경우 이란산 원유 수입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는 EU와 협상 중이라는 것 외에는 확인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일단 모스크바 회의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정부는 이란산 원유 수입 대체처를 이미 확보해놓은 상태다. 지식경제부 고위관계자는 "이란 원유 수입이 중단되더라도 중동 지역에서 그만큼의 추가 구입을 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며 "이란산이 가격이 싸긴 하지만 중동 국가에서 들여오더라도 국내 휘발유 값 등이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사, 이란행 유조선 중단=이란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정유사들은 일단 이번달에는 이란산 원유 수송을 위한 유조선을 띄우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배로 이란까지 왕복하는 데는 35~40일, 편도로는 20일 정도가 걸린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조선을 띄워 한국으로 오는 데 20일 정도 걸려 일단 이번달에는 이란산 원유 수송을 위한 유조선을 띄우지 않았다"며 "정부 대책이 정해지면 이에 맞춰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정유사로는 SK에너지와 현대오일뱅크가 있다. SK는 전체 원유 수입량의 10%를, 현대가 20~30% 정도를 이란에서 들여온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이란에서 들여온 원유는 전체의 9% 정도다. 총 원유수입량 9억2,676만 배럴 가운데 이란에서 8,714만 배럴을 수입했다.
올해 들어 정유사들은 이란산 원유 수입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북해산 브렌트유 등으로 수입선도 다변화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 수출길 막히나=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은 원유를 들여오는 주요한 길이 하나 막힌다는 것 외에도 중소기업에 큰 의미가 있다. 이란 제재를 전후해 우리나라는 대(對) 이란 수출을 크게 늘려왔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은 짭짤한 재미를 봤다.
하지만 이란산 원유 수입이 끊기면 수출이 불가능해진다. 현재 이란과의 수출입 무역자금 결제는 우리나라가 원유를 수입한 금액 내에서 수출 대금을 차감하도록 돼 있다.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이란산 원유 수입이 끊기면 수출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소기업이 수출대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란산 원유 수입자금이 더 많다. 우리나라와 이란의 경우 평소 수입이 수출금액의 2배 정도 된다. 지경부 고위관계자는 "지금 잔액을 감안하면 내년 초까지는 중소기업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그 이후가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즉 문제는 EU 재보험이 불가능해지면 하반기부터는 중소기업도 이란 수출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스페인과 그리스 악재로 전세계 시장이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좋은 수출시장을 하나 잃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60억6,827만달러를 이란에 수출했고 113억5,837만달러를 수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