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쪽지·카톡·문자 예산 뒤집어보기


국회가 연일 문전성시다. 새해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공공기관 관계자 등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 지난달에는 국정감사로 북적대더니 이제는 상임위를 거쳐 예산심의 최종 관문인 예산결산특위 예산안조정소위 위원들에게 로비가 향하고 있다. 소위는 50명의 예결위원 중 여당 몫인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당연직으로 참여하고 여야가 지역별로 6명씩을 할당해 총 15명으로 구성된다. 특히 칼자루를 쥔 여야 간사는 5~10분 단위로 읍소의 물결을 소화해야 한다. 소위의 한 위원은 "기획재정부안을 상임위에서 증액·감액한 것을 지키거나 뒤집으려는 막판 몸부림이 대단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문제는 해마다 국회가 정부 예산안에서 겨우 1% 안팎 증액·감액밖에 못하는데도 정당한 예산심의권마저 도마에 오른다는 것이다. 세입예산(세법) 확충을 위한 여야의 논쟁도 논란이 될 때가 많다. 마치 국회가 예산과 세법을 누더기로 만든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현실이다.


이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큰 상황에서 정치권이 자초한 측면도 크다. 고질병인 상임위의 '묻지마 증액'이 우선 비판 대상이다. 올해도 16개 상임위에서 감액·증액심사 결과 정부안(376조원)보다 15조원대나 증액시켜 예산안조정소위에 넘겼다. 한 상임위 전문위원은 "기재부가 사전에 챙기지 못한 민생예산도 증액하지만 대체로 생색내기식으로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상 소위에서는 상임위의 감액분은 대부분 채택하지만 증액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하지만 국민이나 언론으로부터는 "나라 살림살이는 생각도 않고 자기 것만 챙긴다"는 뭇매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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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가 감액심사는 언론에 공개하지만 증액심사는 밀실에서 처리하는 것도 비판을 받는 주요인이다. 상임위에서 시작해 소위로 넘어오면 "내 예산은 꼭 통과돼야 한다"는 쪽지(A4 또는 메모지)나 카톡, 문자 발송이 기승을 부린다. 16일부터 시작돼 오는 21일 끝나는 소위 감액심사는 15명의 위원이 모두 참여하지만 22일부터 30일(여야 합의시 연장)까지 이뤄지는 증액심사는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기재부 제2차관과 예산실장 등과 밀실 협의를 하게 된다. 여야가 최근 "쪽지예산은 없다. 호텔 심의도 안 한다"고 다짐했으나 상임위에서 무수한 쪽지가 난무했고 소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지역구 홍보를 원하는 의원들이나 자기 예산을 지키려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로비가 거셀 수밖에 없어 쪽지가 사라질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이 과도하게 지역구나 민원 예산을 챙기다 보면 효율적 예산편성 집행은 물 건너 가게 된다. 특히 소위에서 예산 증액과 삭감을 확정할 때 밀실에서 짬짜미가 이뤄지면서 그동안 '실세예산' 등 뒷말이 무성했다. 그럼에도 회의록도 없어 증거가 남지 않는다. 물론 여야가 복지나 세법 등 정치적 타결이 필요한 측면도 있으나 실세들이 수천억원짜리 사회간접자본(SOC)예산 중 억지로 30억원가량을 밀어넣고 두고두고 재정에 부담을 주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심지어 상임위도 안 거치고 막판 소위에서 관철시키는 파렴치한도 있다. 무엇보다 정작 진짜 실세들은 각 부처와 기재부의 예산편성 단계에서 이미 무리하게 예산을 대부분 반영시켜 놓았다. 우리가 365일 예산편성과 심의를 감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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