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뉴스 포커스] 공기업 인사파행 부른 모피아의 오만과 고집

신보 이사장 인선 2년연속 파열음… 무슨일 있길래<br>제식구 자리 나눠주기에 금융위 또 동일인물 추천<br>이사장 재연임 끝나지만 임원추천위 일정도 못잡아<br>관료ㆍ정치인 인사 놀음에 거래 기업들도 불편 가중


#지난 2012년 7월12일.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송별회 형식의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런데 퇴임을 하루 앞둔 16일 청와대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더니 안 이사장은 재연임을 하게 됐다. "안 이사장의 탁월한 경영성과"가 이유였지만 실제론 금융위원회가 밀었던 고위 관료를 청와대가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데자뷰'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신보는 또 다시 이사장 인선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안 이사장의 임기가 오는 17일로 끝나지만 지난달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는 소집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안 이사장은 적어도 한달 이상은 임기를 더해야 한다.


신보의 모습은 현 정부 공기업 파행 인사의 압축판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겉으로는 '모피아(재무부+마피아)'가 금융지주사 회장과 공공기관장을 차지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청와대의 인사제동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의 고집과 오만이 금융권의 인사파행을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신보 이사장 후보로 2년 연속 같은 인물을 후보로 추천했다.

상황은 이렇다. 지난해 금융위는 신보 이사장으로 A씨를 밀었다. 그는 30여년간 금융 관련 업무를 한 베테랑 공무원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A씨가 부산ㆍ경남(PK) 출신이라는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신동규 NH금융지주 회장 같은 주요 회장들이 PK여서 PK가 금융권을 싹쓸이한다는 비판이 많았던 때다. 이후 신보 이사장 공모는 중단됐고 안 이사장이 1년을 더 하게 됐다.

문제는 다음이다. 올해 다시 신보 이사장을 뽑는데 금융당국은 이번에도 A씨를 밀었다. A씨가 최종적으로 이사장에 오를지는 알 수 없다. 청와대의 제동으로 이번에도 가능성이 낮아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결과는 차치하고 과정 자체가 문제다. 한 자리에 특정 인물을 계속 미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금융위가 공공기관을 포함해 내부 인사구도를 미리 짜두고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짜고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말이다.

철저하게 모피아들의 자리 나눠먹기가 가져온 결과다. 중소기업 지원의 최일선이자, 국민의 보증책무를 책임지고 있다는 조직의 중요성은 안중에 없다.

신보 이사장의 인선과정은 국민의 상식과 관료들의 관념적 틀이 얼마나 괴리를 지니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기업 인선 파행의 원인에 대해 다양하게 해석하지만 신보의 지난 1년여 인선과정만 연구해도 국내 공기업 인사의 심각성을 완벽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전문성은 모르겠지만 2년째 같은 자리에 똑같은 인물을 내세울 수 있는 모피아들의 사고방식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도 있었다. 금융감독원 전직 임원 B씨의 경우인데 당초 그는 한 협회의 수장에 유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B씨는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이미 기획재정부 출신 내정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모피아 출신이 자리했고 B씨는 다른 금융회사의 계열사에 자리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내정 직후 인사를 제멋대로 하는 금융사들의 내치(內治)를 지적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금융당국의 내치'라고 시장 관계자들은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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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례들의 문제점은 인사의 원칙이 깨진다는 데 있다. 특히 이런 일이 반복되면 조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비단 사람의 바뀜이 문제가 아니다. 선정작업이 혼란을 일으키면서 조직은 물론 업무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신보가 그렇다. 물론 곧바로 심각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 새 이사장 임명이 늦어지더라도 안택수 현 이사장이 과도기적으로 업무공백을 최소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계에서는 경기침체로 한계에 내몰린 기업이 많은 상황에서 인사 때문에 한 곳의 중소기업이 피해를 본다면 누가 보상해줄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의 자리가 정해져야 부점장과 아래 직원들이 방향을 잡고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중기 지원을 외치고 있어도 현장에서는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업체들이 많다"며 "대표적인 보증기관으로 중기 지원 업무에 중요한 신보에 인사 문제가 명쾌히 풀리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신보만 해도 설립 이후 37년간 내부 출신 수장이 나온 적이 없다"며 "공기업 수장 자리를 금융당국 출신이 다 꿰차면서 조직 내부에서 능력 있는 인사를 키우려는 시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에너지나 자원개발 관련 공기업들은 요즘 거의 업무마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선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시장 개척은 꿈도 꾸지 못한다. 네트워크도 거의 붕괴 상태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만 하더라도 우리 측 인사가 워낙 자주 바뀌어 해외 인사들은 누구와 호흡을 맞춰야 할지 모른다며 당혹스러워 한다.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금융과 KB금융은 인사 때문에 몇 달 동안 거의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공기업 인사 파행은 이렇게 우리 시장 전체를 곪게 만들고 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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