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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 비행기의 제트엔진이 "난기류로 마모가 빨라져 세척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항공사는 도착시간에 맞춰 정비사와 장비를 대기시키고 대체 비행기를 준비했다. 이처럼 비행기의 각종 부품에 부착된 센서가 정비와 부품 교체시간을 미리 알려주기 때문에 고장이나 정비를 이유로 비행 일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없다.
# 공장에서 작업자에게 "A라인에 있는 B로봇의 피로도가 상승해 24시간 내 고장 확률이 50%로 높아졌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작업자는 스마트글라스로 B로봇의 위치와 필요한 장비를 확인한 후 정비 예정시간을 입력했다. 작업자가 도착하자 라인은 멈췄고 스마트글라스는 작업 순서를 알려줬다. 예기치 못한 고장으로 작업이 중단되는 일이 없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부품과 공장, 산업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스마트 커넥티드 부품과 공장이 경쟁 룰을 새로 써가고 있다. 하드웨어 기반의 기업은 성능 좋은 센서를 기계장비에 부착하고 네트워크로 연결한 후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고 관리하는 산업인터넷(industrial internet)을 활용해 효율성과 수익성을 대폭 높였다. 개별 공장의 운영기술(OT)과 정보기술(IT)을 합친 지능형 장비도 대폭 확충하고 인간과 기계가 협업할 수 있는 전략도 마련하는 중이다. 기업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기계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하나로 묶어 통제하는 AtO(All to One·만물제어)를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중이다.
이 중에서 GE·지멘스·롤스로이스·오라클 등 글로벌 혁신기업의 행보가 눈에 띈다. 이들은 몇 년 전부터 산업인터넷을 지렛대 삼아 제품에 서비스를 얹은 하이브리드 신사업을 선보이고 승부수를 띄웠다. 에릭 브리뇰프슨 MIT 디지털비즈니스센터장은 '제2의 기계시대'라는 책에서 "2년 내에 등장할 컴퓨터의 성능은 기존의 모든 컴퓨터를 다 합친 것보다 좋을 것"이라며 "머지않아 진정한 기계지능이 탄생하고 공통의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세상이 곧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사소한 결함에도 도미노처럼 연쇄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성이 커졌고 기계와 일자리 경쟁을 해야 하는 소설 같은 일이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모든 하드웨어를 연결하다=글로벌 기업들의 혁신 속도가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르다. 부품과 기계, 공장을 스마트하게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특히 미국 제조업의 맏형인 GE의 발 빠른 행보가 눈에 띈다. GE는 지난 2011년 11월 사물인터넷(IoT)으로 모은 정보를 활용해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산업인터넷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언했다. 일찌감치 방향을 튼 셈이다. 그리고 3년 후인 지난해 가을, 제프 이멀트 GE 회장은 "전 세계에 있는 항공기와 기차, 발전소, MRI(자기공명영상) 장비 등 1조달러가 넘는 수많은 기계장비에 1,000만개의 센서를 부착해 5,000만종류의 데이터를 매일 모니터링하며 분석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기계의 성능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고장도 크게 줄었다"고 강조했다.
항공, 석유·가스, 교통, 발전, 건강, 자원개발 등 거대장치산업에 산업인터넷을 적용함으로써 효율성 증대와 비용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GE는 고객사가 효율을 1%만 올려도 항공업종은 연간 2조~3조원, 석유·가스 분야는 5조~7조원, 발전소와 병원은 각각 4조~5조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실제로 브라질 정부는 월드컵 기간에 항공기 이착륙을 관리해 비행거리와 운항시간·연료를 상당히 절감했다. 미국 플로리다병원도 환자 데이터를 다른 병원과 공유하면서 적절히 분산배치했다. 이를 통해 효율적인 치료가 가능해져 9개월 동안 환자들의 입원시간을 3,000시간이나 줄여줬다.
많은 기업들이 통합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산업용 기기와 소프트웨어(SW) 분야의 선두주자인 지멘스도 제조와 IT 융합을 추진 중이고 보쉬도 연료 주입구에 RFID를 장착한 후 수십만 가지 정보를 모아 제품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 오라클도 SW와 하드웨어(HW)를 융합한 제품 판매에 뛰어들었다.
◇'제조+서비스=하이브리드 비즈니스' 뜬다=지금까지 제조업체는 "제품을 출고하면 모든 일이 끝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출고=새로운 서비스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제품 판매 후 실제 고객이 사용하는 데이터를 받아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관리와 수리, 부품 교체, 제품 교체 등을 해주면서 더 많은 수익을 얻는다.
대표적 사례는 항공엔진을 파는 롤스로이스다. 이 회사는 자신들이 판매한 1만4,000개의 엔진, 4,000대의 항공기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그러다 고장징후가 포착되면 엔지니어가 달려가 미리 조치를 취한다. 판매에서 유지보수까지 원스톱으로 서비스하면서 1980년대 8%였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어섰다. 조만간 엔진에 상주하면서 실시간으로 수리하는 로봇도 선보일 계획이다. 또 GE는 자사의 기계 운영체제(OS)인 프레딕스를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나 iOS처럼 산업인터넷 세상의 공통언어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마존이 소매업을, 애플이 음악산업을 뒤흔든 것처럼 GE가 제조업의 장벽을 허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