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SK글로벌의 법정관리 논란을 계기로 도산절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주 진로에 대해 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내린 바 있는 서울지법 파산부는 굵직굵직한 부실기업 문제를 처리, 경제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파산부는 경기 부진으로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부실기업을 정상화하는 `주치의`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병든 기업의 나이팅게일`
서울지방법원 파산부를 이르는 말이다. 서울지법 파산부는 지난 주 진로의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내린 것을 비롯, 최근 굵직굵직한 부실기업 문제를 잇따라 처리하면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원활한 기업 회생ㆍ퇴출절차 필요=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전체 경제상황과도 맞닿아 있는 부실기업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실제로 법관으로서는 익숙한 일은 아니다. 민ㆍ형사 재판은 경위야 어떻든 유ㆍ무죄로 분명하게 나눌 수 있지만 도산관련 일은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답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면서 일시적인 어려움에 빠진 부실기업을 정상화 하는 것도 기업을 새로 세우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졌고 이에 따라 `주치의`로서의 `파산법원`의 역할도 강화되고 있다.
서울지법 파산부가 출범한 것은 지난 99년 3월. 그전에는 서울지법 민사50부에서 일반 민사사건과 함께 도산사건(회사정리ㆍ화의ㆍ파산)을 관할했다. 하지만 98년 IMF 사태를 거치면서 도산기업이 급증했고 당시 한국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계은행(IBRD)의 충고도 있고 해서 도산관련 독립부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파산부의 설치로 법원은 기존 민사부ㆍ형사부와 함께 3부체제를 이루었으며 현재는 한단계 격상된 파산법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해지고 있다.
◇3년 임기로 전문성 확보=서울지법 파산부는 수석부장판사를 포함, 모두 8명의 판사로 구성돼 있다. 편제로는 4합의부와 4단독 재판부로 나눠진다. 합의부는 3인의 합의에 의해 판결을 내리며 부실기업 등 큰 사건을 처리한다. 단독 재판부는 개인파산 등 소규모 사건을 맡는다. 법관은 2년마다 보직을 바꾸도록 돼 있으나 전문성이 요구되는 파산부는 이보다 1년이 긴 3년 동안 자리를 지킨다.
변동걸 수석부장판사는 사시 13회로 부산지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이번 진로의 법정관리를 담당한 제3파산부를 맡아 원만한 결론을 이끌어 냈다.
이영구 부장판사는 사시 23회로 서울민사지법 판사,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보철강공업의 매각협상 타결을 서두르고 있다. 도산법 전문가로 통합도산법 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이진만 판사(사시 28회)와 기아특수강을 담당하는 김현룡 판사(〃30회), 건영 등을 맡고 있는 박재완 판사(〃31회), 두루넷과 뉴코아 등을 맡고 있는 윤강열 판사(〃33회), 진로의 주심인 박형준 판사(〃33회), 극동건설 담당인 오영준 판사(〃33회) 등이 포진하고 있다.
◇M&A로 새 주인찾기 주력=사회적으로 파장이 크고 파산부도 가장 중점을 둔 사건을 역시 법정관리 사건이다.
단 전체 경제상황이 변하면서 파산부가 법정관리 기업을 처리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지난 99년 이전에는 법정관리를 통해 기업을 보존하며 자력 갱생을 촉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IMF사태를 거치면서 회생을 위해서는 확실한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전제아래 기업인수합병(M&A)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보철강이 AK캐피탈컨소시엄에, 극동건설이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에 매각 된 것을 비롯, 기아특수강ㆍ건영 등이 잇따라 매물로 나와 있다. 이 중 프로칩스가 6개월만에 매각돼 법정관리 조기졸업 최단시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파산부가 다루는 사건형태로 파산사건의 중요성도 덜하지는 않다. 특히 개인파산부분에서 잇단 면책 결정으로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논란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법원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갱생의 의지가 있는 신청자에게 면책결정을 내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독립된 파산법원 지향=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통합도산법이 제정되면 파산부의 모습도 많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화의절차가 없어지고 개인파산의 전단계인 `개인회생제도`가 도입돼 개인사건이 폭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도산법은 파산부가 궁극적으로 파산법원 체제로 가야 한다고 규정했다.
한편 도산사건 자체가 직ㆍ간접적으로 현실의 경제상황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법원도 관련 업계ㆍ기관과 정책적으로 충돌하는 여러 쟁점을 가지고 있다. 법정관리 기업의 상장폐지 논란 등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업무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최수문기자 chs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