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在旭 환경부장관본래 문명은 자연에서 출발하였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태도나 관점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산업혁명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자연을 경외하면서 자연의 일부로 삶을 영위해 왔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현상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조상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환경을 특별히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물론 이는 우리가 농경민족이란 사실에서 연유하는 바가 크다. 벼농사와 밭농사는 물이 있어야 가능한데, 물은 자연을 잘 관리하고 가꿀 때 만이 확보할 수 있는 자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선조가 자연을 예찬하고 아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으며, 자연사랑 환경사랑의 흔적 역시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선조의 정신세계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삼신사상은 자연을 신의 경지까지 승화시키고 있다. 삼신이란 다름 아닌 땅, 물, 산이다. 즉 땅과 물과 산이 모두 신, 곧 하느님과 같은 존재로 믿고 아끼고 숭배하고 함께 살아 온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관념은 일상의 삶으로 이어져 나타났다. 음식찌꺼기 중 큰 것은 개를 먹이고 잔 찌꺼기는 닭에게 준 후에 그래도 남는 것이 있으면 퇴비를 만들어 텃밭을 가꾸었다. 가을에 감나무가지 꼭대기에 남아 있는 감을 따내지 않고 「까치밥」으로 남겨 놓아 날짐승까지 배려하고, 고시례를 통해 새·벌레와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 또한 뜨거운 물도 반드시 식혀 땅에 버리는 습관으로 땅속에 사는 미물도 상하지 않도록 애썼다.
우리 선조는 동물과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냈다. 어려서 농촌에서 성장한 사람은 누구나 처마 밑의 제비집을 기억할 것이다. 시골 처마 밑 석가래나 대들보 옆에는 으레 제비가 집을 짓고 살았다. 제비는 흙과 검불로 집을 짓기 때문에 물고 가던 흙이 마루에 떨어지기도 하고 똥을 싸 놓기도 했다. 그래도 제비를 한 식구로 생각하고 전혀 지저분하다거나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비가 집을 짓기 쉽도록 추녀 부근에 나무판자로 받침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의 우화는 이러한 동물사랑의 정신을 극화한 것이다.
선조들의 자연사랑은 죽어서까지 계속된다. 객지생활을 한다거나 해외에서 사는 사람이 고향이나 고국의 자연을 그리워하고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돌아가야 한다는 소망이 강했던 것도 사실은 자연사랑, 자연회귀의 본능이었으리라.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김상헌이 고국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읊은 시를 보면 자연에 대한 가이없는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절박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별사를 부모나 임금에게 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게 했던 것이다.
한편 오행(五行)의 원리도 자연의 순환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사물과 사물은 서로 관련을 갖고 인과관계를 형성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오행의 원리를 보자. 오행의 金, 水, 木, 火, 土는 자연의 순환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금은 지하자원을 뜻하는 것이며 땅의 기운을 대변한다. 땅의 기운은 물(水)에 영향을 미치고 그 물과 땅의 기운을 받아 나무가 자라며 나무는 다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불(火)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다시 흙이 되고 거름이 되어 땅의 기운을 높인다.
이러한 원리는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한자이름의 돌림자, 즉 항렬은 대개 오행순서로 바뀌는데 이는 자연순환의 원리를 모두의 마음속에 대대로 심어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이 순환하듯 모든 행위나 나쁜 기운은 항상 어디엔가 남아 있기 마련이다. 환경오염문제도 마찬가지다. 환경과 인체에 해로운 오염물질은 자연에서 끊임없이 순환한다. 예컨대 인체에 해로운 수은의 경우 증발하면 공기중에 머물러 대기오염을 일으키고 물에 들어가면 수질오염을 야기하며 땅에 들어가면 토양을 오염시키고 식물에 흡수되어 이를 섭취하는 동물이나 인간의 몸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이제 우리는 오염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후손들에게 깨끗한 자연을 돌려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한 산수사랑의 정신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것이 곧 자연이 살고 우리가 함께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