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정부는 세월호 침몰 사태에서 여실히 나타난 것처럼 행정고시를 통한 기존 계급제 채용방식은 전문성 결여, 무사안일 등의 부작용을 양산하며 ‘철밥통 공직문화’를 초래했다고 판단, 능력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는 직위분류제를 통상과 재난안전 분야에 우선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직위분류제는 순환보직 형태로 여러 부서를 자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업무나 직위에 전문적으로 일하도록 하는 것으로 직급이 같더라도 업무의 종류ㆍ난이도ㆍ책임에 따라 서로 다른 보수를 받게 된다.
14일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통상과 재난안전에 대해 직위분류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살펴보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곧 발표하게 될 국가개조 마스터플랜에도 ‘관(官)피아 적폐’ 근절 해법으로 계급제 를 축소하고 직위분류제를 확대하는 방안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공개채용을 통해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하고 능력과 실적에 따라 보수와 승진이 결정되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계급제 채용방식에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직위분류 방식을 한국현실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국무총리실 아래 신설되는 국가안전처와 재난안전 구조본부 등에 먼저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유무역협정(FTA) 및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다자 경제협력을 통한 교역을 강조하고 있고 전문인력에 대한 필요성도 고조되고 있는 만큼 통상 분야에도 직위분류제가 도입된다.
정부 관계자는 “10개 이상의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간 전문인력이 교체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업무연속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통상분야에서도 직위분류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고시 중심의 채용방식은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로 성장하는 관료를 육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다”면서 “대기업이 재무ㆍ영업ㆍ회계 등 각 부문별 최고경영자(CEO)를 두는 형태로 전문화되는 것처럼 정부 관료 역시 ‘제너럴리스트’에서 ‘스페셜럴리스트’로 분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학술원 개원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관피아 척결에 대해 “정부는 세월호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공공부문부터 솔선수범하면서 사회 모든 영역에서 기본에 충실하고 각자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국가시스템을 혁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은 인식의 대전환과 함께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며 “과거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과감한 혁신과 개혁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