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39> 기억과 망각


심인성 기억 상실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의 경험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리는 병입니다. 정신병리 전문가들은 이 병에 대해서 ‘현대의 엘리트’들이 많이 걸리는 질병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장관급 공직자의 취임이나 사건의 정리를 위해 입법부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청문회에서 그런 기제가 자주 발동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문제를 파헤쳐서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상당수 후보자들은 비슷한 답변을 내 놓습니다. ‘죄송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의심합니다. 그렇지만 법적 처분과 관계없이 전문가들이 회상법을 통해 당사자에게 과거의 특정 장면을 떠올리게 해도 결과는 비슷하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기억, 옳지 못한 기억은 머릿속에서 완벽히 지워내려는 결심 때문에, 진실로 있었던 과거가 없어진 것처럼 되는 것이죠.


인생에는 동상이나 조각처럼 아로새겨야 하는 진실만 있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자랑스럽지 못하고 ‘찌질한’ 시절들도 있습니다. 또는, 더 이상 기억하기 싫은 아픔 또는 상처를 남긴 기억들도 있습니다. 특히 10대 때의 상처는 평생토록 그 사람의 인식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란 드라마에서도 선생님에게 가혹한 상처를 받고 학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여주인공 이야기가 그려진 적이 있었죠. 자신이 정말 잘못되었든 그렇지 않든 타의에 의해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면, ‘심인성 기억 상실증’이 발동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위로해주려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는데’라고 퉁명스럽게 답하거나 외려 화를 내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망각과 부정을 통해 일부러 치유한 상처를 누군가가 벌린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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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의외로 고등학교 생활을 기억하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고 꿈이 많을 시기를 왜 부정하고 망각하려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해 봐야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에게 가장 가슴이 답답해지고 부담스러운 과제는 바로 대입시험입니다. 그런데 그 ‘허들’을 누군가 자연스럽게 뛰어넘게 되면 그렇지 못한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우울한 현실 속에서 사소한 소통의 실수 또는 사회화의 부족은 갈등이나 따돌림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 집단 폭력을 주도하는 아이가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간에 모두가 ‘스트레스’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고 헐뜯는 상황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이렇게 보면 고3 교실에 대한 기억을 나중에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많은 현실이 설명됩니다. 실제로는 그들의 기억 속에 그때의 상황이 저장이 되어 있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들을 복원해야만 할 때가 종종 있다는 겁니다. 특히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든 기억을 망각하는 습관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요즘 들어 국가적인 재난이 생길 때마다 지도자들은 과거의 비슷한 사건들을 일부러 ‘망각’하려 애쓰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끄러움과 안타까움 때문이겠죠. 그러고 보니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남긴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어렸을 적 친구의 뒷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 물질주의에 찌들어 살면서도 반성이 없는 한 사람의 모습에서 그녀는 당사자가 그토록 부정하고 없애 버리고픈 ‘부끄러움’을 읽어냅니다. 때때로 망각은 아팠던 순간을 지워버리는 치유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삶이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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