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기 제조회사 ‘질레트’사가 어린이 공원 앞에 면도기 광고판을 설치해 광고를 한 적이 있다. 어린 소년들이 자라 성인이 되면 질레트 면도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점령당하지 않은 깨끗한 머릿속에 질레트 브랜드를 먼저 자리잡게 해 미래의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성인을 상대하는 마케팅이 한계에 달한 만큼 어린이를 겨냥한 광고는 계속 늘고 있다. 미국 어린이 채널인 ‘니켈로디언(Nickelodeon)’의 한 마케팅 간부는 자사의 주요 광고주가 자동차 회사라고 밝혔다. 어떤 자동차 회사가 구매력 없는 어린이를 상대로 광고를 한단 말인가. 이유인 즉, 한 가정에서 두 대의 차를 가질 경우 두 번째 자동차는 대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구매하는데 이러한 종류의 차 구매에 있어서 어린이의 의견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국내 이동통신사들도 10대 청소년의 파급효과를 인식하고 치열한 광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몇 년 전 SK텔레콤의 TTL, KTF의 Bigi, LG텔레콤의 홀맨과 같은 광고 캠페인은 청소년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다양한 제품욕구에 부합하는 새롭고 감각적인 메시지를 쏟아내 10대를 사로잡았다. 휴대폰을 비롯해 식음료ㆍ장난감ㆍ게임기ㆍ컴퓨터ㆍ학습지ㆍ문구류 등 수많은 기업들이 청소년층을 목표 소비자로 광고를 만들고 있다.
필자는 몇 년 전 암스테르담에서 새끼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 재롱을 부리다가 사라지면서 광고가 시작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어린이는 광고와 프로그램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로키(Locki)’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광고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현재 네덜란드 어린이들은 ‘로키’를 좋아해서 실제 프로그램보다 광고를 더욱 많이 시청한다고 한다.
발달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어린이가 10세쯤 되면 기본적인 가치체계를 갖추고 ‘좋다’ ‘나쁘다’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10세 이전에 보고, 듣고, 그리고 흉내내며 배우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 남미국가에서는 TV프로그램과 방송광고가 어린이 교육의 주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어린이는 TV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만큼 방송광고가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스웨덴 TV에서 어린이 광고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이유도 어린이에게 미치는 상업 광고의 악영향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미성년자의 미숙함 혹은 순진함을 이용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그들을 선동해서는 안된다’는 유럽강령이 잘 지켜지고 있다. 이윤추구에 눈 먼 기업들이 어린이를 종신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갖가지 마케팅 기법을 펼칠 때 누가 이들을 보호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