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나라 경제 수준이 지금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을 때 국민들 사이에서 '미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무엇이라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세련되고 우월하다는 이미지로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됐다.
미제의 우리나라 버전인 '한류'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까. 다른 지역은 몰라도 적어도 동남아 지역에서 한류는 과거 '미제'가 갖고 있던 우월적 이미지가 있다는 데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유석하(사진) 기업은행 글로벌자금담당 부행장은 "우리나라는 제조업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는데 이제는 한계에 부딪혔다"며 "더 많은 한국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문화의 접속 없이는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유 부행장이 최근 미얀마로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최대 경제도시인 양곤에서 정치수도인 레피도로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300㎞ 여로 중 휴게소가 딱 한 곳이 있었다. 휴게소에는 대장금ㆍ허준 등 한국의 유명 드라마가 진열돼 판매되고 있었다.
유 부행장은 "그때 문화가 가진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며 "미국이 과거 양키문화를 바탕으로 제조물품을 팔았듯 한류의 힘을 활용하면 우리나라 경제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부행장은 미얀마에서 목격한 또 다른 사례를 들며 문화콘텐츠가 가진 소프트파워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태국에서 대홍수가 나자 일본 자동차기업들은 침수됐던 자동차를 수리해 미얀마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 결과 미얀마 도로 위 차량은 90% 이상이 일본 브랜드가 됐다. 일본은 이외에도 미얀마가 안고 있는 해외채무에 대한 지급보증 및 20억달러의 무상원조 등으로 시장선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 부행장은 "미얀마 시골 구석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는 알아도 일본차는 모른다"며 "일본이 놓친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문화의 힘이고 우리나라는 한류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장착시켜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품의 질이 똑같다면 소비자는 익숙한 것을 소비하게 돼 있다"며 "한국 드라마 속에는 한국의 옷ㆍ집ㆍ음식 등 의식주가 다 들어가 있는데 한류는 소비자 인식 자체를 바꿔주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유 부행장은 "국민소득 1만달러까지는 소수의 산업만으로도 가능하지만 3만달러, 4만달러 이상으로 가려면 산업의 레벨이 점프해야 하는데 문화와의 접목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성향이 다이내믹하고 손재주가 뛰어난 한국 사람들은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