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현재의 네번째 4년 임기가 끝나는 내년 6월 다섯번째 연임될 전망이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지난 22일 “그린스펀 의장이 다음 임기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에 그린스펀 의장도 “부시대통령의 신뢰에 감사하며 상원이 임명을 인준하면 봉직할 의사가 있다”고 화답했다.
그린스펀 의장이 5연임 할 경우 재임기간 20년의 FRB 역사상 최장수 의장이 된다. 1987년 레이건 행정부 때 의장에 발탁된 그는 지난 15년 동안 4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90년대 10년간의 최장기간 호황 기록의 미국경제를 이끌어 `경제대통령`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호황의 기록과 함께 불황의 기록도 갖고 있는데 취임 첫해의 `블랙 먼데이`와 2001년 이후 현재도 지속 중인 장기침체가 그것이다.
올해 77세의 고령으로 최근 전립선비대증 수술을 받은 그는 특히 부시행정부의 핵심적 경제정책인 감세정책에 부정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런 그를 부시대통령이 다시 지명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가 이끄는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기술혁신이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와 인플레 없는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90년대 미국경제의 10년 호황도 거기에 연유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2001년 이후 미국증시의 버블붕괴와 함께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어 그의 명성이 손상된 것도 사실이나 그는 미국경제가 회생할 것이라는 낙관 속에서 저금리 정책을 꾸준히 밀어붙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그린스펀에 대한 재신임 의사를 표명한 것은 그의 신념과 처방에 대한 신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단기적으로 효과가 없는 정책이라도 장기적인 비전속에서 꾸준히 추진되는 것이 미국경제가 강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금융정책의 본산인 FRB 의장의 장수 전통은 그것의 단적인 예다. 현재까지 최장수 기록은 윌리엄 마틴 의장의 18년10개월이다. 대부분의 의장들은 정부를 달리하면서 봉직했다. FRB 이사의 임기도 14년이다. 경제정책은 정부를 초월해서 추구되는 것임을 말해준다.
거기에 비할 때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안정적으로 추진되기 보다 냉ㆍ온탕의 되풀이가 일상화 됐다. 장관의 평균수명이 1년 남짓이다. 경제장관은 더 짧다. 공직의 임기제마저 정착이 안돼 편법으로 운용되기 일쑤다. 자신이 `낙하산 인사`임을 뻔히 알면서도 임기보장에 기대어 뭉그적대는 염치없는 공직자들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임기보장을 한다고 해놓고도 경영평가를 해서 보장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엄포를 놓는현실이다. 인선이 투명하고 임기가 보장되며, 잘 된 인사에 대해서는 정권까지 초월해 봉사의 기회를 주는 인사제도가 아쉽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