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김승유의 숙제


우리의 은행에는 눈물이 배어 있다. 갓 들어온 행원들은 모르겠지만 선배 뱅커들은 혹독한 시련의 터널을 거쳐 오늘의 은행을 만들었다. 최근 몇 년 금융산업의 수준이 오히려 뒷걸음질쳤다는 얘기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건전성만큼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낫다.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우리의 선배 은행원이요, 그들에게 혈세를 아낌없이 넣어준 국민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은행원을 떠나보냈다. 환란 직후부터 이뤄진 통폐합의 과정에서 수많은 은행원이 떠났고 '눈물의 비디오'를 찍었다. 그들은 온몸으로 저항했지만 그래도 떠나는 순간에는 힘겹게 이뤄진 통폐합이 성공하기를 마음 깊이 기원했다. 우리 금융산업 통폐합의 상징 환란의 치욕스러운 굴레에 들어선 지 꼬박 14년. 우리 눈앞에는 또 하나의 은행 통합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다. 당국의 승인 절차가 남아 있지만 이변이 없는 한 내년 초에는 한 집안으로 묶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통합의 주체는 바로 하나금융이다. 하나가 어떤 곳인가. 그들은 단자사에서 출발해 환란 직후 보람과 충청은행을 연거푸 삼키면서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다시 은행산업의 굵은 줄기를 형성해온 '조(조흥)ㆍ상(상업)ㆍ제(제일)ㆍ한(한일)ㆍ서(서울)'의 막내인 서울은행을 흡수해 오늘의 모습을 일궜다. 인수합병 과정만 본다면 우리 금융산업의 상징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거친 굴곡을 거치면서 적지 않은 아픔을 겪기도 했다. 기자는 하나에 흡수됐던 한 은행의 고위 임원이 합병 직전 전화를 통해 울음을 토해내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은행의 흔적이 사라지고 아끼던 후배들을 속절없이 떠나보내는 아픔을 울음으로 대신한 것이다. 아픈 과거지만 은행원들의 이런 울음은 곳곳에 퍼져 있다. 과거 우리 은행산업의 최고 인재들이 몸 담고 있다던 장기신용은행이 대표적이다. 사실 장기신용이 국민은행에 합병될 당시 금융인들은 그들이 우수한 두뇌로 국민은행에서도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기대는 깡그리 빗나갔다. 장기신용의 인재들은 얼마 되지 않아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는 국민은행 안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다. 장기신용의 사례는 하나금융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실 외환은행에는 장기신용 이상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있다. 자산 구성뿐 아니라, 이를 운용하는 인재들도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들은 덩치는 크지 않아도 최고의 인재 집단이 모여 있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어느 곳보다 알토란 같은 조직이라고 믿어 왔다. 그런 그들이 지금 온몸으로 하나금융으로의 피인수를 거부하고 벌써부터 직장을 떠나려 하는 것은 비단 쫓겨날 것을 두려워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팔려가는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자 울분이 묻어난 처연한 몸부림이다. 상처입은 외환인들 어루만져야 오늘의 하나금융을 만든 산증인인 김승유 회장이 마지막으로 할 일은 여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 회장이 최전선에서 더 일을 하겠지만 그래도 그는 금융계의 원로 중 원로다. 그가 이제 온몸을 던져 할 일은 외환은행과의 원활한 통합이고 그것은 바로 상처 입은 외환인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일이다. 그 일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 40년 금융인의 생활에서 체득한 뱅커로서의 웃음과 눈물을 외환 식구들과 오롯이 나누는 일, 그것이 바로 외환인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이요, 김 회장이 성공한 금융인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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