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들의 대출모집인 의존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래에 신용카드·저축은행·생명보험·할부금융·대부업체 및 외국계 은행의 국내 지점 등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가계대출 및 신용대출의 상당 부분을 대출모집인에게 의존하고 있다. 대출모집인은 금융사에 대출고객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모집인은 나름대로 전문성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대출을 중개해 비용을 절약하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가령 금융사 정규직 직원이 직접 대출을 모집할 경우 높은 임금 때문에 모집 수수료보다 인건비가 더 들 수 있다. 대출모집 기능이 효율적이고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금융사들이 외주를 주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모집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시중은행들이 근래에 모집인 의뢰를 폐지하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모집인을 통한 신규 신용대출을 중단한 것은 은행 창구에서 직접 내준 신용대출보다 모집인에게 의뢰한 경우 연체율이 3~4배가량 높았기 때문이다.
고율의 모집 수수료가 서민들에게 고금리 대출로 전가되는 것도 문제다. 모집 수수료가 과다하고 이것이 서민대출의 고금리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일자 금융 당국은 지난해 6월부터 수수료 상한제를 실시했다. 제2금융권의 일부 금융사들은 그동안 10% 안팎의 높은 수수료를 지급해왔는데 수수료상한제가 실시되면서 대출금리가 인하됐다고 한다. 대출 시장에 불완전성과 비능률이 고금리를 유발한다면 정부의 규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대출모집인은 금융사의 비(非)정규직이나 파견근로자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내에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을 늘리기 어렵기 때문에 비용 절약을 위해서 모집인의 의존도가 늘어나는 것이다. 높은 모집 수수료는 금융사의 고임금과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반영한다. 모집 수수료가 높아서 대출금리가 높다기보다 금융사의 고비용 구조가 수수료를 높이는 것이다.
금융사들의 대출모집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은행·보험·저축은행·카드·캐피털 등 금융권 주변에서 성업해온 모집인은 대규모 직업군이 됐다.
그러나 올 들어 대출중개업이 크게 위축되면서 대출모집인도 줄고 있다. 최근에 금융감독 당국은 신용카드 3사의 1억건이 넘는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대출모집인이 개인정보의 수요자라는 점에서 대출모집인 제도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불법 유통 정보를 활용한 대출모집인은 업계에서 퇴출되고 대출모집인이 고객 유치 때 정당한 개인정보를 활용했는지에 대해 고객과 금융사가 확인하도록 한 것이다. 불법 개인정보를 이용한 영업이 중단되면서 대출중개업이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앞으로 금융사는 고객정보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유출 방지를 위해서 대출 기능을 사내로 흡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신용정보가 풍부하면 대출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이 줄어들고 금융이 발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고객정보의 불법 유출과 범죄 활용으로 금융산업이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출모집인의 존재 자체가 금융시장의 능률을 저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집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금융사 본연의 기능이 취약하고 비능률적인 고비용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금융사의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럴 경우 금융사들은 스스로 위험 관리 및 고객정보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하고 고객에게 직접 대출을 늘려서 서민들의 대출금리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금융사들은 안이하게 대출모집인에게 의뢰해서 외형 경쟁을 벌이기보다 대출심사 기능을 강화하고 고객정보 관리를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출모집인도 스스로 양질의 신용정보를 생산하기보다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각종 부실 및 범죄 위험을 증가시켜서는 안 된다. 대출모집인이 대출 시장에 유출된 고객정보를 취득하는 '장물아비'가 돼서는 급변하는 규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