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기자는 고속도로에서 말 그대로 휴가전쟁의 끔찍한 현장을 보고야 말았다. 다행히 남들보다 서둘러 귀경길에 오른 터라 도로에 갇히는 아찔한 순간은 피했지만 상행선에서 바라본 하행선의 차량행렬은 ‘전쟁’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 7월31일과 8월1일 양일간 고속도로를 이용한 차량은 총 821만대로 여름휴가 기간으로는 가장 많은 교통량을 기록했다. 혹자는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라더니 휴가 길은 꽉꽉 막히는 것을 보면 국민들의 위기의식이 없다고 빈정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삐딱한 시각으로 고깝게 볼 것은 없다. 힘든 시기일수록 제대로 재충전해야 일의 능률도 오르는 법이다. 게다가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달라고 국민들에게 당부한 바 있다. 10년 전, 환란 때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금 모으기 운동에 적극 나섰던 국민이다. 해외여행을 하지 말라면 기꺼이 동참하는 ‘기특한’ 국민이다.
돌이켜보면 경제위기 때마다 정부는 ‘남 탓’만 하며 국민에게 고통을 떠넘기기 바빴다. 국제수지 적자는 국민들의 호화 해외여행 때문이고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 부재 탓이고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정부는 국내에 호텔ㆍ골프장 하나 허가할 때마다 온갖 규제를 가했고 신용카드 남발을 방치했으며 기업들이 투자할 만한 환경을 만드는 데 주저했다.
이번 위기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정부는 상반기 재정집행을 열심히 했다며 기업들의 투자를 촉구하고 나섰지만 투자하면 얼마나 세금을 내야 할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투자에 나설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주차장이 돼버린 고속도로는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한 우리 경제의 상징일 수도, 정부 시책에 적극 호응하는 국민 애국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할 일 다했으니 이제는 민간이 나서라”고 등 떠밀 게 아니라 투자 유치를 위해 무엇을 점검하고 소비진작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펼지 고민해야 한다. 국민은 이번 휴가기간, 정부에 또 하나의 큰 숙제를 던져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