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러브콜’을 우리에게 던진 나라가 또 있다. 바로 콜롬비아다.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이 직접 친서를 보내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요청했단다. 일종의 데이트 신청이다. 그런데 데이트 날짜가 말썽이다. 하필이면 우리 집안에 큰 제사가 있는 날 만나자는 것이다. 그날 외에는 시간이 안된단다. 심지어 우리 대통령이 콜롬비아로 가는데도 자신들의 스케줄에 맞추란다. 집안 제사까지 얼렁뚱땅 해치우고 이 데이트를 하러 가야 할까.
남녀 간의 데이트라면 이런 식의 구애는 퇴짜 맞기 십상이다. 한쪽이 그 먼 거리를 감내하고 만나러 가는데 일정도 맞춰주지 않는다니 말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오는 16일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순방에 나서기로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우리 국민 295명이 사망하고 실종자도 9명이나 되는 사건이 발생한 날, 국가적인 제삿날이다. 비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대통령이 1주기 당일 합동 분향식에 참석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지만 순방을 위한 요식 행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순방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정상외교라는 국익을 저버릴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을 애도하고 온 국민이 받은 충격과 아픔?상처를 달래는 것과 콜롬비아 순방 성과를 비교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이 지금 당장 콜롬비아 정상과 만나 해결해야 할 ‘고난도 외교 사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의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는데도 콜롬비아 측에서 16일을 고집했는지도 의문이다.
연인 사이에도 사랑의 주도권 싸움을 통한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대개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 상대방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약자다. 상대방이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국가 간 외교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이런 측면에서 콜롬비아와 우리나라의 정상외교는 성사되기도 전에 이미 권력 우열이 정해졌다. 여기에다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현 정권 중심인물들의 금품 수수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순방을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상외교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콜롬비아는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6?25전쟁에 참전했고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한국과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정상 간에 만나 우리가 어려운 시기에 도와준 점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향후 협력 관계를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명심할 것이 있다. 굳이 16일에 떠나는 중남미 순방의 결과가 무엇일지 국민들이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것이라는 점이다.
노희영 정치부 차장 nevermind@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