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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지형이 여의도 국회로 가파르게 재편되면서 갈 길 바쁜 청와대의 고민과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갈 길은 먼데 해는 저무는, 그야말로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처지로 내몰리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의 '뼈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증세 없는 복지'는 야당은 물론 여당으로부터도 비판을 받으며 궤도수정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비박계가 지도부를 장악한 새누리당은 등을 돌린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인선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인적쇄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당초 '소폭 개각' 방침에도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더해 정치권에서 인화성이 높은 개헌 문제까지 들고 나오면서 민생경제 회복과 경제활성화 이슈가 뒷전으로 내몰릴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청, 복지·세금 이슈에 묵묵부답=박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야당은 법인세 인상 등을 통해 복지재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고 여당도 새로 진용을 구축한 지도부를 중심으로 복지 구조조정, 증세 방안 논의 등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의 수정이나 변형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압박을 의식한 듯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증세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여야가 먼저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해 증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여야 정치권과 정부가 증세 문제를 놓고 열띤 공방을 전개하고 있지만 정책방향을 제시해야 할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신주단지 모시듯 지켜왔던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을 수정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기존 방침을 고수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가는 여야의 협공에 국정동력만 또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여야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원칙을 앞세워 기존 입장을 고수하기도 사실상 힘들다"며 "최 경제부총리의 국회 업무보고 발언이 청와대와 어떠한 형태로든 조율한 것이라면 결국 청와대도 국회 입장을 따라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세 논란과는 별도로 개헌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는 것도 청와대의 고민거리다. 박 대통령이 개헌론에 대해 '경제 어젠다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고 우려한 것처럼 개헌 이슈가 본격화될 경우 민생경제 회복, 경제활성화 등 당장 해결이 시급한 경제정책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
◇청, 개각 범위와 시기 놓고도 장고(長考)=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소폭 개각'을 예고했다. 이완구 의원을 신임 국무총리로 내정했으며 청와대의 경우 정책조정 등 3명의 수석을 교체했고 민정·안보·홍보·사회문화 등 4개의 특보단도 만들었다.
하지만 추가적인 부분개각의 시기가 지연되고 있다. 당초 공석인 해양수산부 장관을 비롯해 2~3명의 부처 수장만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박 대통령이 개각의 폭을 훨씬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후속작업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실질적인 인적쇄신을 요구하고 있어 박 대통령이 당의 요청을 거부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김기춘 비서실장이 물러나는 것은 물론 개각의 대상과 폭도 훨씬 넓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해수부·국토교통부·통일부 이외에 법무부·외교부 등 2~3개 부처가 개각 대상에 추가로 포함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개각작업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개각 발표 시점을 이 총리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준이 끝나는 오는 12일 이후로 잡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