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 홍보대행 업무를 하는 A사는 최근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있던 사무실을 지하철 3호선 교대역 인근의 7층짜리 건물로 옮겼다. 회사 사정은 좋지 않은데 현재 사무실이 있는 대형 빌딩의 임대료와 관리비는 계속 올라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 옮긴 건물주가 이사비용과 인테리어 비용을 일부 부담하기로 해 쉽게 이전을 결정할 수 있었다.
강남지역 대형빌딩에 빈 사무실이 늘고 있다.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데다 높은 관리비와 임대료에 부담을 느낀 입주업체들이 보다 저렴한 중소빌딩이나 외곽지역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있는 탓이다.
역삼동 J공인 관계자는 "이면도로의 중소빌딩이라도 역세권 등 입지가 좋은 곳은 공실이 거의 없다"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 중소빌딩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업체들의 중소빌딩 이전이 잇따르면서 그동안 도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 사무실이 적었던 강남권 대형빌딩 공실률도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자산관리 업체인 교보리얼코의 조사 결과 올해 1ㆍ4분기 A급(연면적 1만~2만㎡) 빌딩의 공실률은 3.67%로 전분기보다 0.65%포인트 늘어났다. 반면 C급(연면적 5,000㎡ 이하) 빌딩의 공실률은 5.06%로 오히려 1.06%포인트 줄었다.
강남권 대형빌딩의 공실 증가는 오피스시장의 특성과 관계가 깊다는 분석이다. 도심권의 경우 주로 대기업 사옥이 많아 이동이 적지만 강남권은 정보기술(IT) 업체를 비롯한 금융ㆍ법률자문 등 중소규모 업체의 비중이 높아 이전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김태호 알투코리아 이사는 "굳이 대로변을 택할 필요가 없는 업체의 경우 좋은 임대조건을 내거는 빌딩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대형 오피스빌딩의 공세에 위기를 느낀 중소규모 빌딩들이 적극적으로 임차인 유치에 나서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일정기간 이상 임대계약을 하면 3개월 정도는 임대료를 내지 않는 '렌트프리(rent free)'는 기본이고 전기ㆍ가스요금 등을 일부 보조해주거나 관리비를 할인ㆍ대납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임차수요가 적은 3~4층 입주업체에는 이사비나 청소비용까지 대신 내주기도 한다.
조성남 상가투자컨설팅 연구원은 "100㎡ 정도 크기의 사무실이 관리비 지원 등을 받게 되면 대형빌딩에 있을 때보다 월 100만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이는 중소업체에 매력적인 조건"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강남권 대형빌딩의 공실 증가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반기 중 강남구 수서동ㆍ대치동 등의 신규 공급이 예정된데다 삼성엔지니어링ㆍ포스코그룹 일부 계열사가 지난달 강남 지역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기본적인 수요가 있어 강남권에서 급격하게 빈 사무실이 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당분간 공실률은 증가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