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나?"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했다. 먼저 떠난 내 새끼가 묻힌 가슴. 평생 갈 그리움과 고통이 명치 끝을 찌르는데 그 아픔의 시간을 어찌 말로 다 풀 수 있겠는가.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09호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 끝에 사망했다. 이유도 모른 채 둘째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1년간 아들에 관한 기사를 모았다. 평범한 아버지는 거리로 나갔고, 같은 처지인 사람을 만나 고문의 문제를 알게 됐다. 책은 저자가 고(故)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 씨를 만나 나눈 이야기와 박 씨의 일기장을 바탕으로 '그 날의 비극'은 물론 28년간 남은 자들(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 이어 온 민주화를 위한 치열한 싸움을 기록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민주화 시위인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민주화를 부르짖는 목소리 한가운데는 박 씨뿐만이 아닌 수많은 '6월의 아버지·어머니'가 서 있었다. 최루탄에 아들을 잃은 배은심(故 이한열의 어머니)은 이 땅에 다시는 최루탄이 쓰이지 않게 하겠다며 온 힘을 다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말을 남기고 불꽃 속에 눈 감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은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이끌었다. 그렇게 28년. 대한민국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아비는 여전히 할 말이 없다. 1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