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보증기관이 15% 연체이자 받아 회초리보다 원금탕감 등 해줘야

기보·신보가 모럴해저드 방지 명분 은행보다 더 옥죄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 "직을 걸고서라도 연대보증 문제를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연대보증제도를 '금융의 독버섯'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만큼 국내 금융시장에서 연대보증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실제 김 위원장이 적극적인 제도개선 의지를 보이며 5월 금융계에서 연대보증제도는 사실상 자취를 감춘 듯 보였다.

하지만 서울경제신문이 파악한 결과 현실은 달랐다. 이른바 금융공기업이라 불리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이 수십년째 연대보증채무인들에게 연좌제의 고통을 전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른바 모럴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 이들 공기업의 설명이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고금리의 연체이자까지 부과해가며 연대보증채무자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제어하는 채무상환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의 시각이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신보와 기보가 장기 부실채권에 대해 보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채무상환계획을 제시해 장기 채무자들의 재기를 도울 수 있도록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살인자보다 채무자가 더 중범죄(?)=기업체 경영에 관여하지 않아도 단순보증인으로 설정돼 연대보증 채무를 떠안게 된 신보와 기보의 연대보증채무자들은 '기한 제약이 없는 채무상환의 압박'을 가장 큰 고통이라고 말한다.

민법상 채권 소멸시효는 10년으로 명시돼 있다. 빚을 져도 10년이 지나면 빚 상환 의무가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채권만기 도래시 채권자가 민사소송 등을 통해 채권 소멸시효를 10년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채무자의 고의적인 채무상환 회피를 방지하겠다는 의도인데 이 경우 연대보증채무자는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수십년 동안 연대보증채무를 떠안아야 한다.

신보의 한 연대보증채무자는 "형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도 15년인데 신보나 기보의 연대보증채무인들은 20년, 30년이 넘도록 연좌제의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연대보증채무자 옥죄는 이중ㆍ삼중의 족쇄=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1년 민법이 개정되며 신보 및 기보의 연대보증채무자들 역시 은행연합회에 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되고 있다. 2012년 8월 현재 신보의 부실채권 기업 숫자는 16만5,000개. 업체당 연대보증입보인이 2~4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명의만 빌려줬다가 졸지에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한 연대보증인 숫자는 최대 6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연합회에 채무불이행자로 일단 등재되면 채무를 상환하지 않아도 7년이 지나면 전산상에서 기록이 삭제된다. 장기 채무자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정상적인 경제활동 재기를 돕기 위한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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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신보와 기보의 연대보증인들은 사정이 다르다. 7년이 지나면 다른 채무불이행자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전산상 기록은 삭제되지만 보증채무가 존재한다는 신용정보는 채권 소멸시효가 연장될 때마다 수십년 동안 함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현대판 '주홍글씨'인 셈이다.

◇보증이관이 15% 연체이자…회초리 대신 현실적인 제도개선 필요=신보나 기보의 융통성 없는 깐깐한 채무상환 기준이 연대보증채무자나 주채무자들의 상환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신보나 기보는 연체 채무자에게 동일하게 연 15%의 연체이자를 부과하고 있다.

과거에는 20% 이상이던 연체이자를 18%로 인하하고 이를 2000년대 초반에 다시 15%로 인하한 것인데 시중은행들조차 신보나 기보의 연체이자가 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시중은행들은 연체 채무자의 신용도나 기존에 거래했던 금리, 연체기간 등을 고려해 최저 12%에서 17%까지 차등적으로 연체이자를 부과한다.

더군다나 지난해 말과 최근에도 가계부채 연착륙에 동참하겠다는 취지로 연체이자를 자체적으로 2~3% 정도 인하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신보나 기보의 경우 10년 넘게 동일한 연체이자를 고수해오고 있는 셈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신보와 기보의 연체이자 체계는 시중은행과 비교해도 과한 측면이 있다"며 "서민들의 이자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현실적인 연체이자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주채무자와 연대보증채무자들의 채무상환을 도울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환계획 마련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물론 신보는 최근 특별캠페인을 통해 한시적으로 7년 이상 부실채권 기업 5만곳의 단순연대보증인에게 원금의 50%를 감면해주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신보가 현실적으로 채권회수가 어려운 장기 부실채권뿐 아니라 일반 연대보증채무자들에게도 연체이자 및 원금감면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신보와 기보의 주채무자들 중에서도 장기 채무자에게는 일정 부분 원금과 이자를 탕감해주고 실질적인 빚 상환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신보와 기보는 부실 발생 이후 수십년이 지나도 주채무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단 1%도 감면해주지 않고 있다.

금융계의 한 전문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기금인 만큼 모럴해저드는 철저히 견제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과도한 채권회수에만 집중하기보다 주채무자나 연대보증채무자들이 빚을 상환하면서 동시에 재기를 모색할 수 있는 방향으로 채권회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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