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아트토이(Art Toy) 박람회인 '아트토이 컬처 2014'가 이달 초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렸다. '아트토이'는 단순한 장난감과는 엄격히 구분되는 것으로 디자이너의 독창성이 가미돼 예술 작품의 경지까지 올라선 수집용 완구 인형을 가리킨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분야다. 그런데 지난 1~5일 닷새간 열린 입장권 1만2,000원짜리 이 행사에 4만2,000명의 관람객이 운집했다. 입장객 줄이 너무 길게 늘어선 나머지 주변 행사장에서 "영업에 방해되니 조치를 취해 달라"고 항의가 빗발쳤을 정도다. 어린이날 주간에 열린 장난감(토이) 행사였음에도 관람객의 대부분은 20~30대 어른들이었다. 패션 감각이 탁월한 '물 좋은' 남녀가 많았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수집용 장난감과 피규어의 평균 가격은 5~6만원 수준이지만 이 행사에서는 50만~60만원 대에 아트토이도 거래됐다. 희소성과 창의성이 10배의 부가가치를 만든 셈이다. 행사를 기획한 이정용 가나아트센터 신임 대표는 "이 같은 장난감 시리즈의 수집문화는 비주류문화로 치부되지만 'B급''서브컬처'로 치부되던 이들이 훗날 신(新) 문화 주도층으로 올라선다"며 "이번 첫 행사의 성공에 힘입어 내년부터는 참여작가도 늘리고 규모를 키워 매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B급 놀이문화가 신수요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있다. B급 놀이문화로는 앞서 언급된 아트토이를 비롯해 한정판 피규어 수집, 레고 조립 등 어른이지만 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키덜트(kidult)' 문화 혹은 마니아 현상인 '오타쿠' 문화를 들 수 있다. 만화·오락게임 등도 B급 놀이문화라 할 수 있는데 클래식 등 순수예술과는 거리가 있으며 매스미디어에 기반한 대중문화에 비해서는 개인적이라는 경향이 있다.
◇'예술+장난감' 신 부가가치 창출=아트토이와 피규어를 모으는 이완섭(44) 브레드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자택은 물론 논현동 사무실을 자신의 수집품으로 빼곡히 채우고 있다. 초등학교 때 텔레비전 만화를 보고 빠져든 아톰과 마징가부터 모으기 시작한 그는 현재 20~30개 시리즈의 3,000점 이상의 피규어를 보유하고 있다. 몇 만원짜리 저가 피규어도 있지만 고가품은 60만~70만원짜리도 상당수라 전체 가치는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게다가 이 같은 피규어는 한정 생산되는 수공품이기 때문에 희소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비싸서 구입을 포기했던 700달러짜리 프리미엄 레고가 5년이 지난 지금은 3,500달러를 주더라도 없어서 못 구할 정도다. 이 대표는 국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수집 수준과 방대한 양을 갖고 있어 사립미술관으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기도 했다. 비싼 돈을 들여 이렇게 수집에 열광하는 까닭에 대해 이 대표는 "캐릭터를 모으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스토리"라며 "좋아하는 만화와 영화를 보고 또 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특정 장면을 피규어 형태로 모으고 싶어졌는데 나는 특히 '스타워즈' 시리즈를 수집하고 레고도 내가 다녀온 유럽을 재현하는 도시 시리즈만 관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슈퍼맨·아이언맨·캡틴아메리카 같은 슈퍼히어로 시리즈도 수집하는데 4,000억원에서 2조원까지 추정되는 '어벤져스'의 경제효과도 마블코믹스라는 만화책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며 "저속한 B급 문화, 서브컬처로 우습게 여기는 것들 중에 전율과 감동을 주는 막강한 스토리의 힘을 찾아낼 수 있고 그런 것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신사업도 창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트토이 산업은 홍콩·일본·대만이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는데 홍콩의 '핫토이스' 사는 수공으로 소량 제작하는 슈퍼히어로 시리즈로 유명하다. 이 대표는 "홍콩 핫토이스는 예약 주문을 해 1년 걸려 배송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 피규어의 형태를 만드는 조형사와 색을 입히는 도색사가 모두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도 장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홍콩의 경우 1990년대 중국 공장에서 무분별하게 찍어내던 싸구려 곰 인형을 특별한 장난감으로 만들고자 고민한 결과, 아티스트의 개성과 디자인으로 재해석된 곰 인형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홍콩은 단순한 장난감에 작가의 예술관을 입힌 아트토이 산업을 주도하게 됐다. 국내에서는 커피빈코리아의 박상배 대표가 운영하는 '킨키로봇'이 이 분야의 선두로 꼽힌다. 킨키로봇은 갤러리아명품관을 비롯해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앞, 동대문 두타, 인사동 쌈지길 등지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비주류였던 힙합 음악으로 시작한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도 태권브이를 비롯한 피규어 마니아로 유명하다.
◇"나 옛날에 이렇게 놀았어"=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1980·1890년대의 '오락실' 역시 B급 놀이문화의 하나인데 요즘은 이에 기반한 추억의 오락실게임이 모바일용 앱으로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이달 초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된 '퍼즐버블 for kakao'는 1990년대 오락실에서의 인기를 이어가 단숨에 다운로드 100만건을 돌파했다. 30대 남성들이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즐기던 게임 '진격 1942'는 지난해 출시돼 3주 만에 300만 다운로드 기록을 달성했다. 너구리·팩맨·메탈슬러그·소닉·스노우브로스 등 오락실에서 즐기던 친숙한 게임이 앱으로 출시돼 있다.
1980년대 음악 시장을 주도했으나 지금은 사라지다시피 한 카세트테이프의 부활 역시 놀이문화의 재발견으로 꼽힌다. 김광석 50돌 헌정으로 제작된 카세트테이프는 한정판 1,000장이 단숨에 매진됐다. 남성그룹 브라운아이드소울은 지난 2월 발표한 4집 음반을 시디와 카세트테이프로 묶어 2만장 한정판으로 발매했는데 예약판매 즉시 동났다. 이들이 1990년대 음악 스타일을 추구하는 데서 착안한 전략이 디지털 음원에 지친 아날로그 감수성에 호소해 성공을 거둔 사례다. 세계적인 팝재즈 가수 노라 존스와 펑크록 밴드 그린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도 지난해 듀엣 앨범을 한정판 카세트테이프로 선보였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차갑고 빠른 디지털 시대가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그 반작용으로 따뜻하고 느릿한 아날로그 문화로 회귀하려는 대중적 욕구가 부상하고 있다"며 "특히 나이가 있는 중장년층들이 자기가 젊었을 때 즐기던 놀이를 추억하려는 문화적 경향이 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복고에 젊은 세대까지 동조하고 있다는 것. 정 평론가는 "중장년층은 '추억'을,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누리지 못했던 '동경'을 좇아 아날로그적 정서와 감성, 문화상품과 콘텐츠를 즐기고 싶어한다"며 "이는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것을 따른 결과로 아날로그, 손맛을 느끼게 하는 문화상품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기에 시장성·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생산성과 일 중심이던 사회적 가치관이 주5일 근무제 확대로 여가와 놀이문화에 대한 관심 증가로 변화한 것 역시 과거에 즐기던 놀이문화를 곱씹고 예전에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형성하게 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