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많은 국정 목표를 내걸고 출발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와 지방분권, 혁신, 동반성장이라는 경제적 어젠다부터 당정 분리, 탈권위주의, 과거사 청산과 같은 정치ㆍ사회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화두들이 4년 내내 이어졌다. 이른바 ‘로드맵’으로 상징되는 국정 과제들이 그 중심을 이뤘다. 과욕에 따른 소화불량일까. 불행하게도 너무나 많은 숙제와 끝없는 정치실험, 더불어 이어진 이념논쟁에 치여 국민들은 당혹감과 혼란을 느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한때 한자릿수까지 곤두박질친 데서 볼 수 있듯이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목진휴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참여정부가 지난 4년간 내놓은 개혁정책들이 무조건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의욕만 갖고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했던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와 탈권위ㆍ분권화 시도는 치적=취임 4개월여가 흐른 지난 2003년 6월30일. 노 대통령은 이날 ‘참여정부 경제비전 국제회의’ 개막 연설에서 “2만달러 시대로 가자”고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으며 이는 지난 4년 동안 국정 운영의 뿌리를 이뤘다. 임기 1년을 남긴 지금, 이 목표는 이변이 없는 한 달성될 게 확실시된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여러 분야에서 부정적 면이 없지 않고 환율 효과가 절반 이상이지만 청와대가 강조하는 것처럼 이 또한 ‘경제의 실력’임에는 틀림없다”며 “아무튼 2만달러 시대를 연 것은 현 정부의 공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고 평가했다. 탈권위도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권위주의 탈피를 시도했고 국정원ㆍ검찰ㆍ경찰ㆍ국세청 등 권력기관들을 중립화시켰다. 대통령 스스로 ‘권력의 도구’를 무장해제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집권당 총재직을 맡지 않아 당정 분리 원칙을 실천했다. 분권형 국정 운영이라는 실험적인 새로운 모델을 시도한 것도 역대 정권과는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정치개혁과 관련, ‘돈이 적게 드는 선거’의 풍토를 만든 것은 현 정부의 가장 큰 치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A그룹의 한 재무담당 임원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을 해묵은 정치자금의 굴레에서 어느 정도 해방시켜준 것은 높이 사야 한다”고 밝혔다. ◇요란한 벨 소리만 남은 로드맵=이 같은 일부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냉정한 것은 사실이다. 요란한 벨 소리에 남은 것은 미완의 실험뿐이라는 극단적 평가도 엄존한다. 지난 4년 동안 노 대통령은 끝없는 정치ㆍ경제 실험을 이어왔다. 정치 분야에서는 대연정 제안에서부터 발의를 앞두고 있는 4년 연임제 개헌안으로, 경제 부분에서는 성장과 분배의 동반전략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고 인사에서는 ‘코드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금실 법무장관 임명 등 깜짝 인사가 줄을 이었다. 취임 직후부터 꺼내든 국정 과제 로드맵은 현 정부에 대한 평가를 인색하게 만든 대표적 사례다. 화려한 그림으로 치장한 로드맵은 그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적지않은 사회적 갈등을 양산한 것이 사실이다. 정부 출범 1년 후 253개이던 로드맵은 이후 100개로 줄었다가 임기 1년을 남겨 놓은 지금은 그 존재 가치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초라해졌다. 목 교수는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쳐 비효율적인 국정 과제가 선택되거나 개혁이라는 상징에만 집착해 국정 우선순위가 결여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기 도취였다”고 지적했다. 외교 문제와 관련해 “한미 동맹 재조정과 주한미군 재배치, 전시작전통제권 조정 등 결과적으로 맞는 방향으로 찾아갔지만 실행 차원에서 국력을 소모하는 과정으로 이끌었다”(김태효 성균관대 정치학과 교수)는 평가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문제와 부동산이 남은 1년 좌우=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국민의 냉혹한 평가를 조금이나마 접고 박수를 받고 떠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현실적으로 남북문제와 부동산에서 결정될 듯싶다. 특히 연초 들어 집값이 안정세를 찾으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소폭이나마 반등, 20%대로 올라선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점점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은 그 효용성 여부를 떠나 노 대통령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포용정책’의 대미를 장식해줄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