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투기성 역외세력이 외환시장과 환율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23일 환율이 모처럼 급락세로 돌아선 것도 최근 2주간 강력한 달러 매수로 환율을 급등시킨 역외세력이 매도세를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환율이 단기급등한데다 2월 무역수지 흑자전망과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 등을 감안할 때 당분간 조정장세가 예상되지만 여전히 추가상승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역외 환투기 세력이 환율 좌지우지=최근 환율급등의 배경에는 역외세력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환율이 1,400원에 진입한 뒤부터 역외세력이 ‘달러 사자’에 집중했다”며 “역외 매수는 국내 은행권의 추종 매수로 이어지면서 환율급등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할 해외 대형펀드 등이 매수세의 중심에 있다”며 “장기 매수보다는 반짝 달러강세를 틈탄 단기성 베팅 성격이 짙다”고 밝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외환시장에서 투기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도 이를 염두에 두고 역외세력에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보여진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환 관련 유럽계 및 미국계 펀드에서 대량 매수가 포착됐다”며 “상당 부분 투기적 매매를 목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급등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환율하락도 역외세력의 달러매도가 기폭제가 됐다. 권우현 우리은행 외화시장운용팀장은 “오전 씨티은행 국유화 가능성 소식이 전해지기 전부터 역외에서 한 박자 빨리 매도세에 나섰다”며 “이후 주가반등으로 대기업 네고 물량까지 쏟아지며 낙폭이 커졌다”고 말했다. ◇역외, 달러매수 기조 바뀌나=최근 줄기차게 달러 매수에 나섰던 역외세력이 2주 만에 매도세로 전환하면서 입장 변화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역외세력이 최근 2주간 글로벌 달러 강세 분위기 속에서 강력한 달러 매수에 나섰지만 지난주 말을 기점으로 유로화가 반등에 성공하는 등 변화 조짐이 관측된다”며 “2월 경상수지 흑자와 아세안 통화기금 확대 등 긍정적인 뉴스 등과 맞물려 변곡점에 달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주 말 달러화 대비 1.25달러까지 추락했던 유로화는 이틀 연속 상승하며 1.28달러까지 회복했다. 외국계 은행의 딜러 역시 “환율이 단기간에 급하게 올라 역외에서 추가로 끌어올릴지는 의문”이라며 “1,500원 이상에서는 국내 은행들도 달러 사기가 부담스러운데다 2월 경상수지 흑자 전망도 나와 매수세는 어느 정도 진정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권 팀장은 “그동안 환율이 가파르게 올라 조정심리가 퍼져 있다”며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근본적 변화는 아직 없어서 1,500원 회복을 향한 추가상승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단단히 벼르는 외환당국=역외세력의 환투기 가능성에 대한 당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역외에서 투기적 움직임이 지속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제도적으로 제재를 가하기는 어렵지만 당국이 강력하게 개입해 역외세력의 손실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며 역시 역외 환투기성 매매에 대해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액션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당국의 스탠스가 알려지면 역외세력이 예상하고 들어와 개입 효과가 무력화될 수 있다”며 “긍정도 부정도 않는 태도를 견지하는 대신 필요할 때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들 환율이 상승한다고 생각할 때 개입해봤자 큰 효과를 내기가 어렵다”며 “어느 정도 고점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생길 때쯤 들어가는 전략이 효과가 클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