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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동부 회장은 그룹이 벼랑에 몰린 상황에서도 금융계열사만은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채권단의 동부화재 지분 담보 요구를 처절할 정도로 거절, 금융계열사만큼은 마지막 보루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그가 제조계열사를 내놓더라도 화재를 중심으로 한 금융계열사에 이처럼 집착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부그룹 소식통들은 그 해답을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한다.
첫째는 그룹 지배구조에서 차지하는 금융계열사의 위상이다.
동부 계열사는 총 64개(상장사 8개, 비상장사 56개)로 이는 건설·철강 등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 계열과 보험·증권 중심의 금융계열로 나뉜다. 제조계열이 부진의 늪에 빠진 것과 달리 금융사는 나름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동부화재는 생명 지분 92.9%, 증권 19.9%, 캐피탈 10% 등을 보유한 사실상의 금융지주사다. 지배구조의 한 축으로 화재가 넘어가면 금융계열사를 모두 손에서 놓아야 한다.
동부의 경우 삼성 등과 달리 금산분리도 깔끔하다. 화재가 갖고 있는 제조계열 지분이라야 제철 4.99%, 엔지니어링 1.98% 등에 불과하다. 결국 화재 지분을 내놓는다는 것은 제조에 이어 금융계열마저 채권단에 넘긴다는 뜻과 같다.
제철에 이어 여차하면 다른 제조계열사들도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 있다. 김 회장으로서는 화재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면 제조에서 번지고 있는 불길이 금융계열로 타고 넘어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이유는 금융계열이 그룹의 캐시카우라는 점이다.
동부화재는 매년 4,000억원 내외의 순이익을 냈다. 2013회계연도는 저금리 여파와 3월 결산에서 12월 결산으로 바뀌면서 3개월이 실적에서 빠져 순이익이 2,725억원으로 줄었지만 그룹의 핵심 계열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위험기준자기자본(RBC)비율도 237.7%(지난해 말 기준)로 삼성화재에 이어 최고 수준이다. 이같이 우량한 실적 덕분에 화재 주가는 꾸준히 올라 오너가 주식담보대출을 많이 받도록 하는 등의 우회지원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동부생명의 경우 기업공개(IPO) 이슈가 있다.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동부생명 상장을 통해 유입된 자금을 주요 계열사 지분정리에 활용할 여지가 있다.
시장에서는 동부생명의 상장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 규모를 약 1,000억원대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현실적 이유 외에도 김 회장은 금융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1983년 동부화재 전신인 한국자동차보험의 경영권을 인수해 보험 사업에 뛰어든 김 회장은 2000년에는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를 금융보험부문 회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동부화재가 현대해상과 2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일 정도로 성장하는 데 김 회장이 들인 공이 컸다. 화재의 경영상황을 거의 매달 꼼꼼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세번째는 경영권 문제다. 김 회장의 거의 전 재산은 담보로 잡혀 있다. 김 회장의 화재 지분 6.93%도 담보다. 현재 화재의 최대주주는 아들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으로 14.06%다. 김 회장이 2대 주주이고 딸 김주원씨 4.07% 등으로 오너 일가의 지분은 총 31.3%다.
김 회장으로서는 이미 화재 지분을 채권단에 넘긴 상태에서 장남 지분까지 제공할 경우 경영권이 불안해진다. 제조계열사의 회생작업에 차질이 빚어지면 담보주식은 처분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오너 일가의 화재 지분은 24.37%로 줄어들고 장남 지분까지 넘긴다고 가정하면 10.31%에 그친다. 금융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동부화재 경영권을 통해 금융전문기업으로의 재기를 모색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화재를 잃으면 사실상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