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유럽 국가들의 긴축재정과 그에 따른 경제난으로 유럽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 경기침체로 실업난이 만연한 가운데 연금지급액이 대폭 깎이자 생활고를 이유로 자살하는 유럽인은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부모에게 얹혀 살거나 저임금 비정규직의 덫에 갇혀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워킹푸어(일하는 빈곤층)'로 속속 전락하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와 파업은 이미 일상이 됐고 거리생활로 내몰리는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것은 재정위기의 진앙지가 된 그리스다. 지난 2008년 자살률이 유럽에서 가장 낮은 10만명당 2.8명에 그칠 정도로 낙천적이었던 그리스인들은 수년째 지속돼온 재정난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재 그리스의 자살률은 10만명당 6명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1~5월에는 자살자가 전년동기 대비 무려 40%나 증가했다고 그리스 보건당국은 밝혔다. 자살을 오명으로 여겨 사회적으로 은폐하는 그리스 정교회의 특성상 실제 수치는 이보다 많을 가능성이 크다. 자살방지 상담전화를 운영하는 그리스 구호단체인 크리마카 관계자는 "과거 하루 4~10통에 불과하던 상담이 100건까지 늘어났다"며 "특히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35~60세 남성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텔레그라프지에 따르면 다른 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 사회를 흥분과 분노에 빠뜨린 4일 권총자살이 있기 하루 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서는 78세의 여성이 다달이 받는 연금지급액이 800유로에서 600유로로 삭감된 것을 비관해 투신자살했다. 그보다 일주일 전에는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 지역에서 58세의 회사원이 세무당국 사무실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근 유럽공공보건연맹(EPHA)도 아일랜드와 영국 등에서 경기침체로 인한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며 경기침체가 정신적인 병폐를 초래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경기침체에 따른 실직 공포와 업무 스트레스로 중년에서 노년층 남성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젊은 층도 심각한 박탈감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리스 등 재정위기국의 젊은이들은 물론 프랑스나 독일 등 경제강국의 젊은이들조차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최저수준의 임금을 받고 비정규직 일자리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이른바 워킹푸어로 전락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살 곳이 없어 야영지에서 노숙을 하거나 자동차, 싸구려 호텔에서 생활하는 인구만도 수십만명에 달한다고 NYT는 추정했다. 파리 소재 렝스티튜 데튜드 폴리티크의 장폴 피투시 경제학 교수는 "프랑스는 부유한 나라지만 워킹푸어는 19세기와 같은 생활여건에서 살고 있다"며 "앞으로 워킹푸어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대를 망라하는 유럽인들의 절망과 분노는 최근 들어 간신히 급한 불을 끈 유럽 재정난 사태에서 또 다른 위기의 불씨를 키워가고 있다. 4일 노인이 권총 자살한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는 약 2,000여명의 분노한 그리스인들이 모여들어 경찰과 충돌사태를 빚었다. 이번 사태가 이르면 4월 말 치러질 총선거에 심각한 변수로 작용할 경우 간신히 진정국면으로 돌아섰던 그리스 사태가 다시 한번 고비를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