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투수가 회전을 준 공은 구부러진 경로를 이동한다. 타자가 눈으로 경로를 좇지도 공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치기는 어렵다. 우리는 이를 ‘커브볼 착시(curveball illusion)’라고 부른다.
그러나 커브볼을 치기 어려운 것은 단순한 착시 현상 때문일까. 권오상(사진) UNIST(울산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는 24일 “야구공처럼 움직이는 대상을 볼 때 뇌에서 ‘정교한 추론’이 진행되면서 궤적과 실제가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 정보가 부정확할 수록 그동안 움직인 경로에 따라 현재와 앞으로의 위치를 뇌가추론한다는 얘기다.
권 교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움직이는 물체를 시야 중심에 두면 실제 위치를 그대로 파악하지만, 움직이는 대상이 시야 주변에 있으면 뇌가 움직임 신호에 의존해 위치를 계산한다. 초점에서 멀어져 부정확해진 위치 정보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야구에서 타자는 회전에 따라 실밥이 만든 움직임 신호를 실제보다 더 중요한 위치 해석 단서로 여긴다는 것.
권 교수는 “우리 뇌는 물체가 시야 주변부에 있으면 이를 보정하기 위해 물체의 움직임에 강조점을 두고 정보를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GPS(위성항법장치) 신호를 해석하는 원리와 같다. 내비게이션은 수시로 끊기는 GPS 신호를 보완하기 위해 자동차가 지나온 경로와 최신 GPS 신호를 통계적으로 조합해 현재 위치를 파악한다. GPS 신호가 매우 부정확하면 지나온 경로에 더 많이 의존한다.
권 교수는 “뇌의 움직임과 위치 지각에 관한 다양한 착시는 뇌의 착각이 아니라 오히려 뇌가 똑똑하다는 증거”라며 “이번 연구는 우리 뇌가 공학자들이 고안한 최적화 알고리즘을 이미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15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